김윤덕 문화부장

OCN 드라마 '왓쳐'를 보는 게 주말의 낙이었다. 부패한 경찰 조직, 그 흑막을 파헤치는 스릴러였다. 배우 한석규 때문에라도 본방을 사수했다. 어느새 50대 아저씨가 된 그는 "연기란 이런 것"이라 웅변하는 듯 특유의 껌 씹는 표정에 날 선 지성미로 함께 늙어가는 여심(女心)을 흔들었다.

한석규 이상으로 막바지 무더위를 날려준 배우는 지진희다. 낼모레 오십이지만 군살 없이 딱 벌어진 어깨에 슈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이 남자는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를 자신의 인생작으로 만들었다. 국회의사당 폭파 테러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올곧고 따뜻한 리더십으로 재건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빙의해 현실에는 없는 '정치 판타지'를 선사했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는 각자의 드라마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 정의를 외치고 불의를 응징하다 스스로 '괴물'이 된 자들과 싸운다. 감찰반장 한석규가 맞서는 괴물은 엘리트 경찰들의 사조직 '장사회'다. 각종 줄을 타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들을 사적으로 징벌하기 위해 만든 이 조직은 검경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변질되면서 자신에게 맞서는 이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하고 살해하는 괴물이 된다.

테러로 사망한 대통령 대신 국정을 이끌게 된 지진희가 맞닥뜨린 '괴물'은 드라마 마지막회에 충격적으로 등장한다. 자신들이 꿈꾼 새 정치가 외면받고 정권 재창출마저 불가능해지자 테러라는 가장 극단적 방식으로 혁명을 감행하는, 민주투사 출신의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선거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게 된 그는 국가에 적의(敵意)를 품은 자들을 선동해 의사당을 폭파, "정의를 위해" 수천 명의 국민을 희생시킨다. 경악하는 지진희에게 그는 말한다. "나는 괴물이 될 테니 당신은 좋은 정치를 해주시오."

흥미롭게도, 정의를 부르짖다 괴물이 돼가는 사람들을 우린 현실에서 지금 목도하는 중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을 부르짖던 조국 법무장관 후보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특권이 넘치며 격차가 심한지를 매일 아침 자신의 경우로 증명해 보이면서도, "고통스럽지만 내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며 정의의 사제가 되겠다 한다. 그를 옹호하는 자들의 궤변은 망상에 가깝다. "검찰의 쿠데타"라 주장하는 작가는 상상력이 풍부해서라고 쳐도, 원로 소설가 조정래의 변론은 섬뜩하다. "조국만 한 인물과 정직, 맷집을 가진 사람 없다. 쓸 만한 인물을 못된 놈들이 뭉쳐 살해한 게 바로 노무현과 노회찬이다."

진짜 괴물은 끝내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장사회'처럼 익명의 장막에 숨어 여론 조작을 서슴지 않는 드루킹의 후예들이다. '보고있다 정치검찰' '일본불매 조국수호' 등 실검 띄우기는 누워서 떡 먹기다. 완장 찬 이가 공격 목표를 정하면 좀비 떼처럼 몰려가 총공세를 펼친다. 현 정부를 비판했다간 바로 먹잇감이 된다. 촛불 정권이 낳은 최대 비극이다.

드라마 속 비리 경찰이 "동료를 잡아넣는 너의 행위가 정의냐"고 따지자 한석규는 심드렁하게 답한다. "정의? 난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 지옥 간다는 심정으로 진심을 담아 한 놈씩 잡아넣다가 늙어 죽으려고요." '정치적으로 유리한 사실만이 진실'이라는 기성 정치인들 충고에 지진희는 고개를 젓는다. "옳음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습니다. 오직 시민의 양심과 상식으로 판단할 겁니다."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대통령은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할 모양이다. '괴물이 된 정의' '패거리식 정의'가 쥐고 휘두를 칼자루가 나라를 또 어떻게 만신창이로 만들지 암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