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두(왼쪽) 국방부 장관이 5일 ‘서울안보대화’ 개회식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로버트 에이브럼스(오른쪽) 주한미군사령관 등 참석자들과 손을 잡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전·현직 군 고위 당국자들이 5일 서울안보대화(SDD)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놓고 공개 설전(舌戰)을 벌였다. 56개국에서 온 차관급 국방 관리와 전문가들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당초 이날 행사 불참을 통보했던 미국 측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보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한·미 갈등설을 의식한 듯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소미아 문제로 치받은 한·일

'SDD 한·일전'의 포문은 정 장관이 열었다. 그는 개회사에서 "자국 이익을 우선으로 추구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화하고 있다"며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이웃 국가와 안보 갈등을 조장해 자국 이익을 추구하려는 우려스러운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 주변의 우려스러운 움직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최근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을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당시 현장에는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전 일본 방위상과 일본 측 정부 대표인 요시노 고지(吉野幸治) 방위성 국제정책과장이 있었다. 이들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일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자 모리모토 전 방위상은 개회사 이후 이어진 본회의 1세션 토론에서 지소미아 파기 문제를 거론하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이 여전히 위협과 도발을 하는 가운데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북한은 아직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소미아와 한·일 경제 갈등은 별개라며 "미국, 한국, 일본의 삼각 공조에 있어 심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미래에 지금의 상황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아마도 심각하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19 서울안보대화’ 본회의 1세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재민(왼쪽에서 둘째) 국방부 차관과 모리모토 사토시(맨 오른쪽) 전 일본 방위상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문제를 놓고 책임 공방을 벌이자 사회를 맡은 문정인(맨 왼쪽)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양측에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한국 측 패널로 참석한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정부의 입장을 설명해야겠다"며 반박에 나섰다. 박 차관은 "(강제징용 관련) 갈등이 있던 가운데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 규제를 결정했고, 많은 검토 끝에 한국을 믿지 못하는 나라와 어떻게 민감한 군사 교류를 할 수 있느냐는 판단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자 토론 사회를 맡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소미아 문제는 상당히 예민한, 민감한 사안이다. 이번 세션이 갈등이 진행되는 장이 되어선 안 된다"며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반일(反日) 기조는 장외(場外)에서도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소미아에 대해 "일본이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 정보를 '여기 있습니다' 바쳐야 하는지, 국민들이 납득할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美 눈치 보고, 北 감싸주기

당초 이번 행사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 측이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대표로 보낸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불참 결정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증폭될 수 있다고 보고 미국이 동맹 관리에 나섰다"는 말이 나왔다.

정경두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모든 국가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해상에서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며,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는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수립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추 개념이다. 평소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되도록 언급을 꺼려온 이 개념을 우리 정부가 공개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미 관계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어떤 질문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양측 모두 최근 논란을 의식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정 장관은 이날 북한과 관련해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발사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많은 난관이 놓여 있지만,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상호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에 대해서만 한없이 관대하다"는 얘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