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이 4일(현지 시각) 공식 철회됐다.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 관계자들과 회동, 송환법 공식 철회를 결정했다.

람 장관은 이날 오후 4시쯤 자신의 공관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동했다. 회동을 마친 람 장관은 오후 6시쯤 미리 녹화된 약 8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홍콩 매체들과 방송국은 일제히 람 장관의 영상을 보도했다. 6시 30분쯤에는 영어로 된 발표 영상도 공개됐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오후 6시쯤 미리 녹화된 약 8분짜리 영상을 공개하고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다.

람 장관은 영상에서 "송환법을 공식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홍콩은 안전한 곳인가"라고 되물으며 "두 달 동안 일어난 일(시위)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시위대의 5가지 요구와 관련, 나는 이미 이 법안을 보류하고 이 법안이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법안은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송환법을 공식 철회하진 않았다.

이어 람 장관은 "소수 사람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과 국가 주권에 도전하고 있지만 폭력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폭력을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송환법 공식 철회로 최근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대규모 시위를 잠재우려는 모양새다.

송환법 완전 철폐는 13주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대의 5가지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다. 대규모 홍콩 시민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킨 송환법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이 법을 악용해 반(反)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시위 양상은 송환법 철회에서 전반적인 민주주의 추구 시위로 발전했다.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강경 진압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과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총 5가지를 요구했다.

다만 람 장관은 다른 4가지 요구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때문에 송환법은 완전 철회됐지만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람 장관은 영상에서 경찰의 진압 과정 조사는 홍콩 경찰 감시 기구인 경찰민원처리위원회(IPCC)가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과 불기소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며 시위대의 요구를 거부했다.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와 관련해서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을 경우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당장 수용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람 장관은 홍콩 시민을 만나 불만이 무엇인지 듣고 홍콩 사회 갈등의 뿌리 깊은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 영상이 나간 후 홍콩 공무원에게 ‘혼란 속 역할을 충실해 해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발표 영상을 공개한 후 람 장관은 모든 홍콩 공무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시위 속 각 공무원이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홍콩의 전반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잘 일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외부의 불확실성과 혼란 앞에서 핵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공무원이 단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SCMP는 이날 람 장관과의 회동에 참석한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 람 장관과 친정부 진영의 회동의 1시간 이상 이어졌으며 송환법 철폐 등과 관련한 질의 응답시간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