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행정수반으로서 홍콩에 큰 혼란을 야기한 점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로이터는 람 장관이 최근 경제계 인사들과 나눈 비공개 회동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면서 그가 "나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이번 소요 사태의 긴장 해소를 위한 정치적 상황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런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로이터에 따르면, 람 장관은 "(송환법 시위대를 진압하는) 일선 경찰관에 대한 압력을 줄일 수 없었다"면서 "나와 홍콩 정부에 분노한 수많은 평화적 시위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정치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홍콩 시민들에게) 깊은 사과를 한 뒤 그만두는 것이다"라고 했다.

로이터의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람 장관 측 대변인은 람 장관이 지난 주 재계 인사와의 회동을 포함해 두 차례의 행사에 참석했으며, 모두 사적(私的) 행사였다면서 "최고 통치권자가 행사장에서 한 말에 대해 논평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국무원 역시 이런 람 장관의 녹취와 관련해 로이터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는 이번에 입수한 램 장관 녹음에서는 그가 평소 홍콩 시위대를 향해 발언한 것과는 상충된다(at odds)고 분석했다. 램 장관은 지난달 28일 홍콩 시위를 막기 위해 "정부는 폭력과 혼란을 멈출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제공하는 홍콩의 모든 법규를 검토할 책임이 있다"며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법 발동 검토를 시사했고, 지난 7월 시위대가 홍콩 입법회를 점거한 뒤에는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우리는 엄중하게 비난해야 한다"고 비판했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람 장관은 중국이 홍콩 사태 진압을 위해 인민해방군을 배치할 계획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발언했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의 소요 사태를 끝내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때 발생할 중국의 국가적 평판에 잠재적인 피해를 우려한다는 것이다. 람 장관은 "(군 투입으로 홍콩 사태를 진정시키는 방안은) 값이 너무 비싸서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을 중국 정부는 알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사태를 대처해나갈 의지가 있다"고 했다.

녹취에선 람 장관의 자조적 발언도 있었다. 이번 사태가 ‘국가적인 문제’로 비화(飛火)한 이후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헌법에 따라 ‘두 명의 주인(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을 섬겨야 하는 최고 통지자에게 주어진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쇼핑몰을 가거나 길거리에 돌아다닐 수도 없다"며 "(홍콩 시내에 돌아다닌다면) 검은 셔츠를 입고 마스크를 쓴 반중 시위대들이 나를 둘러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람 장관은 "순진한 기대일지도 모르지만, 장밋빛 그림을 그린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면서 홍콩이 빠르게 안정화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는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다. 매우, 매우 아픈 상황이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