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쪽 이상 문서는 클립을 사용해 고정하시고, 분량이 많을 경우 '집게'를 사용해주십시오(날 클립 X)."

경찰청 경무국은 최근 이런 내용의 공지를 경찰청 내 모든 부서에 내려보냈다. 민갑룡 청장에게 보고할 때 서류를 철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였다. 앞서 민 청장은 경찰청 국·과장들이 참석한 전체 회의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는 부서들이 나오자 경무국이 경찰청에 근무하는 1100여명의 경찰관에게 다시 알려준 것이다. 공지에는 "문서 두께에 맞는 크기의 집게로 고정하라" "두께에 비해 지나치게 큰 집게를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었다.

지난달 경찰청 내부엔 '오·탈자 주의보'가 돌았다. 민 청장이 파란색 사인펜으로 첨삭해 내려보낸 보고서를 일부 부서가 스캔해서 돌려 보고 있는데, 여기에 '아직도 오·탈자를 내는 직원이 있느냐'는 취지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선 민 청장이 '오·탈자 잡기 귀신'으로 불린다"며 "직원들이 오·탈자를 내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민 청장은 30년 넘는 경찰 생활 동안 주로 기획 부서에서 서류 작업을 많이 한 '기획통'이다. 보고서 작성과 관련해 경찰 내 '1인자'로 통한다. 과거 경찰청 주변 제본집에선 "민갑룡이 만든 보고서는 원고 그대로 인쇄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다. 이 때문에 그가 보고서에 유독 민감한 듯하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말한다.

작년 8월 민 청장이 취임한 직후엔 '보고서 양식 통일령(令)'이 발령되기도 했다. 보고서 양식을 통일하고 내용은 '글자 크기 16' '문체부 바탕체'로 쓰라는 지시였다. 그 전까지는 부서별로 제각각이었는데 이를 균일화한 것이다. "'우려'와 '우려됨'을 구분해서 사용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보고서를 쓸 때 '~할 우려'라고 문장을 끝맺는 것은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민 청장의 이런 꼼꼼함 때문에 청장 보고가 몰리는 오후 4~5시가 되면 경찰청사 9층 청장실 앞에선 보고 내용을 중얼중얼 외우는 경찰청 간부들의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보고 도중 수치 등을 말하는 부분에서 더듬대면 지적받기 때문이다. 한 경찰 간부는 "일을 제대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데 가끔은 너무 보고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최근 경찰은 자수하러 찾아온 '한강 몸통 시신' 피의자를 "인근 경찰서로 가라"며 돌려보내는 등 잇따른 기강 해이로 지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