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지식인 시장경제 싱크탱크 '텐쩌연구소', 26년 만에 결국 폐쇄
시진핑 정책 비판하는 교수들 출국금지, 칼럼 포털 삭제도

중국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앞장서 지지해 온 싱크탱크 '텐쩌경제연구소(天則經濟究所·Unirule)'가 중국 정부의 폐쇄 명령에 26년 만에 문을 닫았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인 중국은 당국의 대응 방향에 배치되는 논조의 연구나 지식층 모임을 통제하는 등 내부 기강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외신은 "시진핑 정부 하에서 공론화 공간이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텐쩌연구소는 2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당국이 ‘싱크탱크’를 등록 및 허가하지 않았다"며 폐쇄 사실을 알렸다. 1993년 설립된 텐쩌연구소는 그동안 진보 성향의 중국 지식인에게 포럼과 세미나 등 경제 관련 다양한 정보 교류의 장을 제공해왔다. 셩홍 전무이사는 "중국 정부는 사상표현의 자유 범위를 점점 줄여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톈안먼 사태) 3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4일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린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우산을 쓴 사복 경찰이 줄지어 배치돼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몇년 동안 이 연구소는 중국 정부로부터 극심한 압력을 받아왔다. 지난해 텐쩌연구소 직원들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해외 출국이 금지됐으며, 돌연 사무실 출입문이 폐쇄돼 새로운 공간을 찾을 때까지 직원들은 커피숍 등을 돌아다니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텐쩌연구소는 지난 7월 갑작스럽게 "싱크탱크 기관으로서 운영이 금지됐다"는 정부의 통보를 받았다. 이후에는 ‘정부 허가 없이 웹사이트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사업 허가 취소 조치까지 받았다. 텐쩌연구소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항의 의사를 밝혔으나, 무시될 가능성이 높아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텐쩌연구소는 경제 정책 관련 세미나를 자주 개최해왔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세미나’를 잇달아 개최했으며, 싱크탱크 연구원들은 중국 정부의 교육, 의료, 토지 자원 배분에 관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텐쩌연구소에 대해 "친(親) 시장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싱크탱크로서, 중국의 역사, 토지 자원, 의료 분야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었고 중국 정부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좋은 자원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통제는 더욱 단호해지고 있다. 칼럼 등을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대학교에서 정직 처분을 받는 등 생업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 곳에서 활동하는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법대 교수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올 3월 정직 처분과 함께 대학 본부측의 조사를 받았다.

SCMP는 내부 소식통을 통해 쉬장룬 교수는 대학측의 조사 기간 동안 모든 강연, 연구 활동에서 배제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일본 방문학자 시절 그는 텐쩌경제연구소 웹사이트에 ‘우리가 당면한 우려와 기대’라는 제목으로 시진핑 주석의 통치 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쉬장룬 교수는 중국 정치의 후퇴현상을 비판하며 독재 회귀를 경계하고 개인숭배를 저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로 30주년을 맞았던 ‘텐안먼(天安門)사태’에 대한 재평가도 제의했다.

이 글은 RFA 등을 통해 보도돼 널리 회자됐으나, 중국내 포털에서 지속적으로 삭제됐다. 중국 당국은 일본에서 귀국한 쉬 교수가 해외로 나갈 경우 재입국을 금지한다고 통보해 사실상 출국 금지 처분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쉬 교수는 귀국 이후에도 파이낸셜타임스(FT)중문판 등에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계속 올렸지만 당국의 검열로 삭제당했다고 베이징의 소식통들이 전했다.

재정부 부장(장관) 출신인 러우지웨이(樓繼偉) 전국사회보장기금 이사장도 시 주석이 추진해온 첨단 산업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를 비판한 이후 갑작스럽게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