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은 삼성 측이 최순실(63)씨의 딸 정유라(23)에게 제공한 말 세마리 구입비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등 50억원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뇌물이 맞는다고 판결했다. 이날 판결에 따라 이 부회장의 형량은 다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번째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9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와 횡령·범죄수익은닉·재산국외 도피 등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차장 등에 대해서도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앞서 이 부회장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 명목으로 쓴 독일 코어스포츠 용역대금(36억여원)과 말 세 마리 구입대금(34억여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16억여원) 등을 뇌물로 건넨 혐의로 기소됐는데 항소심은 말 3마리 구입대금과 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래픽=박길우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회장 사건의 핵심 쟁점인 ‘말 3마리’가 뇌물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뇌물수수죄에서 말하는 ‘수수’는 법률상 소유권까지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실질적 사용·처분권한을 갖게 된 경우 그 물건 자체를 뇌물로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최씨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사이에 ‘살시도’와 향후 구입할 말에 관해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등이 최씨에게 말들을 뇌물로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며 "원심은 뇌물수수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지원을 요청하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는지 여부였다. 삼성이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한 돈이 제3자 뇌물이 되려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게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원심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거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계작업을 매개로 영재센터를 지원한다는 묵시적인 인식과 양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부정청탁의 대상과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과 대가성이 특정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부정 청탁 대상이 명확히 정의되고 뚜렷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본 것은 이런 법리에 배치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대통령의 포괄적 권한에 비춰보면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원심이 말이 뇌물이 아니고, 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한 부정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무죄로 판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범죄수익은닉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부분에도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