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호찌민 특파원

지난 13일 오후 호찌민시 10군(郡) 지역. 쌀국수집 등이 늘어선 길거리의 한 카페로 남성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낙 쩨'라는 간판 밑으로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문이 보였다. 어두컴컴한 실내엔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때렸다. 전체 좌석은 70개 정도로 이미 50여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모두 남성이었고,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자가 들어설 때부터 자리에 앉을 때까지 남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에 웬 여성이…" 하는 눈초리였다.

오후 2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 DJ가 무대에 올라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음악을 틀었다. 현란한 조명과 댄스곡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웠지만 손님 중에 춤을 추는 사람은 없었다. 테이블 사이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4만~6만동(2000~3000원)짜리 커피와 콜라 등을 부지런히 날랐다.〈사진〉 여종업원은 손님이 사주는 음료를 자리에 앉아 같이 마시기도 하지만 신체 접촉을 허용하진 않았다. 다만 손님이 맘에 드는 여종업원이 있을 때 따로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5년 전 문을 연 이 카페는 현지에서 남성 전용 DJ 카페라고 불린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런 카페가 수십 곳 뜬다. 도심보다 주로 외곽 지역 등에 많다. 영업 시간은 오전 8시~오후 11시. 이 중 날 덥고 여성 DJ가 출연하는 오후 2~4시가 피크 타임이다. 한낮에 남성들이 에어컨 팡팡 나오는 곳에서 노닥거리며 시간 때우는 모습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한국 일상에 익숙한 기자에겐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한 종업원은 "주로 자영업자나 학생, 임시직 남성들이 많은데, 일과 중에 땡땡이치고 오는 회사원들도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선 낮에도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남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한 남성 전용 카페·미용실 등도 성업하고 있다. 한 50대 남성은 "남성 전용 공간은 베트남 전쟁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등장한 것 같다"고 했다. 전쟁 때 많은 남성이 사망한 데다 여성들이 대거 직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만들어진 베트남의 독특한 자화상이다. 실제 1960년 24~54세 여성 100명당 97명이었던 남성은 전쟁 후엔 93명으로 줄었다.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시작되면서 '여성의 노동력'은 주요 성장 동력이 됐다. 농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외국 기업 제조 공장이나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현재 15~64세 여성 중 79%가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족 생계를 남성보다 여성이 책임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성의 가사 노동은 줄지 않았다. 채용 서비스 업체 아데코베트남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은 하루 평균 5시간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여성은 일하고, 남성은 한가롭게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 적잖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런 장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1년에 두 번(3월 8일과 10월 20일) 기념하는 여성의 날을 없애 버리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MeToo #ngungimlang(침묵하지 말라)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성폭력이나 성별에 따른 부당한 대우를 폭로하는 운동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