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오지 않는다|전치형·홍성욱 지음|문학과지성사|308쪽|1만5000원

1984년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벌였다. 전직 재무장관들, 다국적 기업 회장들,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들, 환경미화원들에게 10년 뒤 경제 전망을 물은 뒤 10년 뒤 실제 상황과 맞춰본 것이다. 예상 밖 결과가 나왔다. 환경미화원과 다국적 기업 회장들이 공동 1위였고, 경제학과 학생들은 훨씬 못 미쳤다. 꼴찌는 전직 재무장관들이었단다.

이 실험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침팬지들이 다트를 던져서 낸 예측이나 초콜릿을 손에 묻힌 아이가 문지르는 방법으로 얻어낸 결과가 전문가들의 예측을 앞지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고 차라리 고심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찍은 결과가 낫다는 것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두 교수는 이 책에서 화려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대신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미래 예측은 왜 곧잘 틀리는 걸까?"

'특이점이 온다'로 유명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도 저자들의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세기말이던 1999년 커즈와일은 10년 뒤인 2009년에 이루어질 기술적 진보 12가지를 예측했다. 하지만 2012년 포브스지 분석에 따르면, 그의 예측대로 실현된 건 한 가지뿐이었다. 네 가지는 절반 정도만 실현됐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동전을 던져서 어떤 질문에 '예스, 노'로 따져본 확률이 더 낫다"고 미래학의 약점을 꼬집는다. 어쩌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석학(碩學)과 엉터리 점쟁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1925년에 상상한 미래의 뉴욕시. 90여 년이 지났지만 빽빽한 고층 건물 위로 비행기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왜 틀리는 걸까. 상당수 미래 예측은 기술이 사회 변화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기술 결정론'에 기반한다. 이 때문에 인간이라는 핵심적 변수를 간과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미래 산업으로 꼽히는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운전자나 보행자 같은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일이라고 한다. 좌회전할지 우회전할지, 감속할지 가속할지, 인도에서 보행자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을지…. 인간의 미래 예측에서 빠져 있는 '공란(空欄)'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말한다. "결국 기술의 앞날에 대한 예측은 실험실 밖에 존재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항상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이 된다"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에 역시 틀림이 없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사장(死藏)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서양을 세 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었던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가 대표적이다. 콩코드 탑승객은 대부분 기업 간부였다. 노트북이 대중화되고 간편해지자 어디서든 업무 처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탑승 가격이 비싼 콩코드를 타야 하는 이유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콩코드의 실패도 기술보다는 인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저자들은 혁신적 기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깊은 '계곡'과 넓은 '바다'를 헤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업화라는 '죽음의 계곡'이 우선이요, 다른 제품과 생존 경쟁을 벌여 이겨야 하는 '다윈의 바다'가 다음이다. 또 기업의 리더가 이전의 성공에 취해서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전도유망한 신기술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종이봉투가 필요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한 다이슨은 당초 후버사에 관련 기술을 팔려고 했다. 하지만 종이봉투 판매량 급감을 우려한 후버사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다이슨은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다이슨 청소기는 혁신의 상징이 됐다. 후버사는 시장 지배력을 빼앗기고 말았다.

신기술의 역설은 시장조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이 대비할 겨를도 없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개인용 컴퓨터(PC)를 개발한 천재 공학자 앨런 케이는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나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적중률도 낮은 예측에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있을까.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책 제목도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밑에 한 줄 덧붙이고 싶어진다.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