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읽을 수 있는 신작 시집이 출간됐다. 한국 시인들의 시집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해온 아시아출판사의 'K-포엣(POET)' 시리즈로, 김정환 시인의 '자수견본집'과 정일근 시인의 '저녁의 고래'가 발표됐다. 기획 단계부터 번역 작업에 들어간 한영 대역 신작 시집은 처음이다.

시집을 기획한 방현석 아시아출판사 주간은 "시인들이 자신의 대표작보다는 최신작을 번역하고 싶어 했다"면서 "시인이 지금 꿈꾸는 것과 시인의 현재 상태를 보여줄 수 있어 더 역동적인 시집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출간된 'K-포엣' 시리즈는 아마존을 통해 전 세계 20여국에서 매월 100여권 정도 판매되고 있다.

번역가이기도 한 김정환 시인은 '자수견본집'을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 김 시인은 "내 시가 어렵다는 말이 많은데 남에게 번역을 맡기면 민폐 아닌가"라며 "직접 번역해보니 좀 쉽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영어로 시를 새로 쓰는 느낌이었다. 영어로 한 줄 쓰고 나면 한국어 시가 바뀌기도 했다." 3부로 구성된 시집엔 "노년이 나를 씻어낸다. 아주 얇게지만 영혼도 씻어낸다"로 시작하는 '노인의 책'처럼 노년과 죽음, 시간을 탐구하는 시들이 담겼다.

정일근 시인의 '저녁의 고래'는 나희덕의 '야생사과', 허수경의 '허수경 시선' 등을 번역해 온 지영실·다니엘 토드 파커 부부 번역가가 맡았다. 정 시인은 "내 시집이 영어로 엮이는 건 처음인데 첫 시집이 나왔을 때만큼 가슴이 뛴다"고 했다. 울산에서 고래 보호 운동을 펼쳐 왔던 시인은 이번에도 동식물 같은 작고 연약한 존재에 연민을 드러낸다. '저녁의 고래'에선 "내 친구 고래는 알 것이네/(…)/사는 일과 살아내야 하는 저녁의 이유를"이라며 고래를 불러낸다.

한국어와 영어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김정환의 시 '쩨쩨한 영혼 진혼곡'은 'Small-minded Soul Requiem' '김장 담그는 겨울비'는 'Kimchi-Making Winter Rain'으로 번역됐다. 계간 아시아 편집위원인 김근 시인은 "시 번역은 사실상 시를 새로 쓰는 작업"이라며 "또 다른 창작물로서의 영어 번역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