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구청 다목적 강당에서 '장학생 시상식'이 열렸다. 초등생 17명, 중학생 11명, 고등학생 9명이 단상에 올랐다. 한 명씩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단상 아래 있던 260여명이 박수를 쳤다. 동대문구 경로당 135곳에 다니는 노인들이었다. 이날 장학금은 경로당 노인들이 용돈을 아끼고 빈 병을 팔아 모은 돈이었다. 모금에 참여한 노인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다.

동대문구 이문쌍용아파트 경로당 소속 박균례(82)씨는 "무대에 올라 상을 받는 학생들을 보며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기도했다"며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휘봉고 김민철(17)군은 "상 받으러 올라가 참석한 어르신들을 보니 편찮으신 외할머니가 생각 났다"며 "감사히 잘 쓰며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했다.

21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화목경로당에서 장학금을 기부한 노인들이 ‘효도학생 장학금 모금함’을 들고 웃고 있다. 동대문구 경로당 135곳에서는 노인들이 10원 동전부터 1만원 지폐까지 시시때때로 모아 8년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올해는 역대 최대 금액인 1310만원이 모여 학생 37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동대문구 경로당의 장학금 모금은 올해로 8년째를 맞는다. 지난 2012년 대한노인회 동대문구지회가 '청소년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며 나섰다. 이어 동대문구 경로당 135곳에 장학금 모금함이 놓였다. 노인들은 각자 형편 닿는 대로 수시로 동전과 지폐를 모금함에 넣는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화목경로당 2층 정수기 위엔 '효도학생 장학금 모금함'이라고 크게 쓰인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경로당 노인들이 오며 가며 넣는 돈은 10원짜리부터 1만원권까지 다양했다. 올해 이 모금함엔 총 35만원이 모였다. 모금에 참여한 이우택(78)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둔 일이 평생 후회된다"며 "자식들이 용돈을 주면 일단 모금함에 먼저 넣고 남은 돈을 쓴다"고 했다. 점당 10원짜리 내기 고스톱을 치고 딴 돈을 모금함에 기부하기도 한다. 매일 경로당을 찾는다는 정덕순(89)씨는 "나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어 얼마 전 큰 맘 먹고 1만원을 넣어 뿌듯했다"고 했다. 정계호(85)씨는 지난 1년간 4만원을 기부했다. "계절이 바뀌고 손주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1만원씩 넣었다"고 했다. 정씨는 "찬 바람 불고 가을이 오면 또 돈을 넣어야지"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한 아파트의 경로당은 올해 55만원을 기부했다. 경로당 자체 최고 기록이다. 경로당의 회장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깐 마늘 대신 싼 통마늘을 샀다"며 "경로당에 에어컨 대신 선풍기 2대를 틀고 더위를 견디며 장학금을 모았다"며 웃었다. 빈 병을 수거해 팔아 날마다 10원, 20원씩 꼬박꼬박 기부한 할머니도 있다. 이 경로당은 모금함 대신 비닐봉지에 장학금을 모으고 있다. '거금'이 든 모금함을 통째로 도난당할 우려가 제기돼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 은밀한 장소에 숨겨둔다. 돌돌 말린 비닐봉지엔 꼬깃꼬깃한 만원권 3장, 천원권 17장, 오백원 동전 4개, 백원짜리 8개, 오십원짜리 6개, 십원짜리 5개가 모였다.

동대문구 노인들은 지난 8년간 학생 327명에게 총 8100만원의 '경로당 장학금'을 지급했다. 장학생은 학교장 추천을 받은 동대문구 학생들로 선발된다. 첫 시상식에서 870만원을 줬고 올해는 역대 최대 금액인 1310만원을 수여했다. 초등생은 30만원씩, 중·고생은 40만원씩 받게 된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라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학생들도 효와 공경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