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던 나라가 이제 커피를 마신다
루이싱 커피, 중국 40개 도시에 매장 3000여개
할인 쿠폰 뿌리고 커피 한 잔도 배달
루이싱 추격에 스타벅스도 배달 시작

16일 오전 8시 30분. 스마트폰 위챗 앱을 열고 루이싱(瑞幸·Luckin) 커피 계정에 들어갔다. 할인 쿠폰 7장이 있다는 표시가 보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샌드위치 한 개, 빵 한 개를 장바구니에 담으니 50.4위안. 주문 합계가 55위안 이상이면 배달비가 무료란 문구가 보인다. 55위안을 채우려고 통에 든 자몽주스 한 개를 추가했다. 자몽주스 하나의 원래 가격은 24위안이지만, 72% 할인 쿠폰을 쓰면 17.28위안을 할인 받아 6.72위안만 내면 된다.

음료 두 개와 빵류 두 개를 사고 57.12위안(약 1만원)을 결제했다. 약 25분 후 음식 배달 서비스 회사 메이퇀뎬핑(美團點評)의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배달원이 파란 사슴 로고가 그려진 루이싱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중국 커피 체인 루이싱이 중국 커피 시장에서 미국 스타벅스를 따라잡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끊임없이 할인 쿠폰을 뿌리고 새 매장을 계속 열면서 스타벅스를 맹추격 중이다. 창업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루이싱이 올해로 중국 진출 20년을 맞은 스타벅스를 누르고 중국 커피 전문점 시장의 1위로 올라설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베이징의 루이싱 커피 매장. 루이싱은 중국 배우 탕웨이를 모델로 기용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1년 6개월 만에 매장 수 3000여개

루이싱은 올해 2분기(4~6월) 순매출이 9억910만위안(약 1562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대비 648% 증가했다고 14일 밝혔다. 매출이 늘었지만 손실도 커졌다. 2분기 루이싱은 6억8130만위안(약 1170억원) 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2분기(순손실 3억3300만위안) 대비 순손실 규모가 두 배 넘게 커졌다. 회사 몸집이 커진 데 비해 까먹는 돈도 많아졌다는 뜻인데, 회사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 기간 월평균 구매 고객 수가 620만명으로 1년 전 대비 410% 늘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루이싱은 적자를 내더라도 자금을 퍼부어 단기간에 해당 산업을 장악하는 중국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들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새 매장을 추가하고 공짜 음료와 할인 쿠폰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적으로 돈을 쓰고 있다. 이는 다분히 스타벅스를 겨냥한 전략이다.

중국 베이징의 한 건물에 루이싱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 매장이 함께 들어가 있다.

루이싱은 올해 6월 말 기준 중국 40개 도시에 296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수도 베이징에 1호점을 연 이후 공격적으로 새 매장을 연 결과다. 2분기에만 593개 매장을 추가했다. 하루 6.5개 꼴로 매장을 새로 낸 셈이다.

현재 주문 후 즉석에서 커피를 내려 파는 커피 전문점 시장에서 매장 수 1위는 스타벅스다. 스타벅스는 6월 말 기준 중국에서 3922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스타벅스가 1999년 베이징 1호점을 시작으로 중국에 진출한 후 4000여개 매장을 내기까지 20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루이싱의 확장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루이싱은 올해 말까지 매장 수를 4500개로 늘리고 2021년엔 1만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매년 600개 매장을 새로 열어 2023년이면 중국 매장 수가 약 6000개가 될 거라 밝힌 바 있다. 두 회사의 계획대로 실행될 경우 루이싱은 2021년이면 스타벅스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중국 최대 커피 체인으로 올라선다.

왼쪽은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이 그려진 봉투, 오른쪽은 루이싱 커피의 파란 사슴 로고가 그려진 봉투.

스타벅스보다 싸게, 쉽게, 빠르게

첸즈야(錢治亞) 루이싱 최고경영자(CEO)는 2017년 10월 회사를 창업한 초기부터 중국인이 인어(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보다 사슴(루이싱의 로고)을 더 많이 들고다니게 할 거라 공언했다. 첸 CEO는 자동차 렌털 서비스 션저우의 최고운영책임자 출신이다. 션저우에서 갈라져 나온 차량 호출 서비스 유카(UCAR)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첸 CEO는 차에서 커피로 업종을 바꾼 후 스타벅스와는 다른 전략을 펼치며 중국 커피 시장을 뚫고 들어갔다.

우선 스타벅스보다 훨씬 싼 가격에 커피를 팔았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태어나 2000년대에 성인이 된 세대)의 소비 심리를 간파했다. 루이싱의 커피 컵 크기는 톨(tall) 하나다. 현재 루이싱에서 판매하는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21위안(약 3600원)으로,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25위안)보다 싸다. 여기에 할인 쿠폰을 수시로 뿌려 기존 고객을 묶어두고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루이싱에서 커피를 한 번이라도 사마신 회원의 계정에는 쿠폰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루이싱은 값만 싸고 맛없는 커피라는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도록 경쟁사 바리스타를 스카우트하고 깨끗한 물을 쓰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첸즈야 루이싱 커피 최고경영자가 5월 17일 회사가 미국 뉴욕 나스닥 증시에 상장한 후 타임스스퀘어 광고판에 뜬 루이싱 커피 상장 화면을 배경으로 서 있다. 루이싱은 이번 기업공개(IPO)를 통해 5억6100만달러를 조달했다.

루이싱이 시작부터 스타벅스와 달랐던 것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게 하고 배달을 한다는 것이다. 루이싱은 전용 앱이나 위챗 또는 알리페이(즈푸바오)의 공식 계정을 통해서만 살 수 있게 했다.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수단이 없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루이싱 커피를 마셔 보고 싶어도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루이싱은 회원들이 앱을 통해 주문하고 결제하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렇게 모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주공략층과 매장 운영 방식, 마케팅 전략을 정했다. 루이싱이 스스로를 커피 회사가 아니라 IT(정보기술) 회사라 부르는 이유다.

루이싱 커피 앱을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가까운 매장에서 음료를 만들고 메이퇀뎬핑 배달원을 통해 집이나 회사로 배달을 해준다.

루이싱과 스타벅스의 주공략층도 다르다. 루이싱 매장은 주로 사무용 건물에 작은 규모로 들어가 있다. 젊은 회사원이나 학생들이 주요 공략 대상이기 때문이다. 주문 후 음료를 받아서 나가는 ‘픽업’ 형태 또는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규모 매장이 대부분이다. 매장 안에 의자 수도 몇 개 안 된다. 이를 통해 매장 하나에 들어가는 운영 비용을 줄인다. 스타벅스가 매장을 아늑하게 꾸미고 고객이 매장에 마음껏 머무르게 하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한 건물에서 스타벅스의 넓은 매장 옆에 루이싱 매장이 조그맣게 들어가 있는 곳도 많다.

스타벅스는 외국 기업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중국 시장에서도 독보적 1위를 지켜왔지만 루이싱의 공세에는 흔들리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8월 알리바바의 음식 배달 서비스 자회사 어러머와 배달 제휴를 맺었다. 앱으로 스타벅스 음료나 빵을 주문하면 어러머 배달원이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해 준다. 최근엔 바리스타가 호텔 컨시어지 서비스처럼 카운터에서 주문과 픽업을 도와주는 형태의 매장을 열었다. 모두 루이싱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중국 상하이 난징시루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 중 하나다.

◇ 차 마시는 나라에서 커피 마시는 나라로

중국은 차를 마시는 나라에서 커피를 마시는 나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국제커피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4~2013년 중국의 커피 소비는 연평균 16% 늘었다. 중국의 1인당 커피 소비는 1년에 3잔으로 미국(363잔)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중산층이 늘고 밀레니얼 세대가 주소비층으로 등장하면서 커피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에는 1980년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4억50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해외 방문 경험이 많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 따르면, 이들 밀레니얼 세대가 알리바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전체 커피 구매의 40%를 차지한다.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이 증가하는 것도 커피 소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 중산층 인구가 2022년까지 약 6억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중산층 소비자 상당수는 인구 수가 400만명 정도인 3·4선 도시에 살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소비 문화가 이들 도시로 퍼져가는 것을 고려하면 중국 커피 시장의 잠재 소비자가 여전히 상당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알리바바가 낸 통계에 따르면, 타오바오와 티몰을 포함한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직전 12개월간 1800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25억위안(약 4300억원) 상당의 커피 제품을 샀다. 이는 1년 전 대비 18% 증가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