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대형마트 의무 휴무일이었던 지난 11일(일요일) 오후 2시 구로구 S식자재마트.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붙은 '연중무휴'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매장 내부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불이 켜진 계산대 7곳마다 손님들이 네댓 명씩 줄을 서 있었다. 입구 쪽 야채 코너에 진열된 당근, 버섯 등은 오전에 대부분 팔려나가 바닥이 보였다. 두 자녀와 함께 마트를 찾은 박모(42)씨는 "주변 대형마트가 모두 문을 닫아 여기 말곤 없다"고 했다.

같은 시각 식자재마트에서 100m 남짓 떨어진 N수퍼마켓에는 손님이 없었다. 가게 주인은 "2016년 식자재마트가 들어오면서 손님이 확 줄었다"며 "나 같아도 크고 싼 곳으로 가겠다. 시장 이치가 그렇고 소비자들도 그럴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었던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의 한 식자재 마트가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매월 두 번 문을 닫아야 하는 대형마트와 달리 3000㎡ 이하 식자재마트는 연중무휴로 영업할 수 있다.

대형마트 규제를 틈타 '식자재마트'가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쉽게 말해 '개인이나 소규모 법인이 운영하는 대형 수퍼마켓'이다. 원래는 주로 자영업자들에게 식자재를 파는 도매상이었는데, 최근엔 일반 소비자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급성장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마트 의무 휴업일이 도입된 2012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했다.

정부는 2012년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를 도입했다. 매장 면적 3000㎡를 넘는 마트나, 대기업 계열 수퍼마켓은 월 2회 의무 휴업하도록 했다. 식자재마트는 이런 점을 파고든다. 실제 구로구 S식자재마트는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가 모두 쉬었던 11일을 '블랙데이'라고 광고하며 주요 품목을 할인 판매했다.

시장 상인과 수퍼마켓 점주들은 울상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인근에는 2017년 250평 규모의 J식자재마트가 들어섰다. 아현시장 야채가게 주인 김모(74)씨는 "예전엔 하루 최대 30만~40만원어치도 팔았는데, 요즘은 10만원도 어렵다"며 "대형마트 휴무일이 있다고 따로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근 중소 수퍼마켓 '킹스마트'는 올해 문을 닫았다. 영등포구 양평시장에서도 식자재마트가 들어오자 400m 거리의 수퍼마켓이 올 3월 문을 닫았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교수가 2013~2018년 전국 24개 대형마트 반경 3㎞ 이내의 신용카드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형 수퍼마켓(연매출 50억원 이상) 수가 68개에서 152개로 124% 늘어나는 동안 소형 수퍼마켓(연매출 5억원 미만) 수는 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소형 수퍼마켓 매출은 0.4% 줄었고, 대형 수퍼마켓 매출은 7% 늘었다. 동네 수퍼마켓은 비슷한 규모 경쟁자가 줄어드는데도 매출이 줄고, 식자재마트는 그 반대인데도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6개 점포를 가진 세계로마트는 2015년 매출 1329억원, 영업이익 63억원에서 작년 매출 3313억원, 영업이익 134억원으로 모두 배로 뛰었다. 장보고 식자재마트(점포 12곳)는 2012년 11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작년엔 71억원으로 늘었다. 조춘한 교수는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의 반사이익을 식자재마트 등 중대형 업체가 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풍선효과'에도 국회에서는 또 다른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을 포함한 의원 11명은 매출액 또는 자산총액 규모가 대규모 점포에 준하는 유통업체도 현행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작년 발의했다.

☞식자재마트

개인이나 소규모 법인이 운영하는 대형 수퍼마켓.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 적용되는 입지·강제 휴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 유통산업발전법이 '매장 연면적 3000㎡ 이상인 대형 마트(대규모 점포)'와 '대형 마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직영하는 중소규모 점포'만 규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