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들어가는 모든 여자는 등에 관을 짊어지고 간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시(64)가 좋아하는 해녀들의 격언이다. 리사 시는 제주 해녀의 삶을 다룬 소설 '해녀들의 섬'을 지난 3월 미국에서 출간했다. 증조부가 중국인인 그는 '상하이 걸즈' 등 주로 중국 여성들이 나오는 역사 소설을 써왔다. 처음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해녀들의 섬'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해외 10여 국에 판권이 팔렸다.

리사 시는 "여자들끼리의 우정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면이 있다"면서 "부모나 남편, 자식한테도 못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그런 친밀함이 쓰라린 배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어판(북레시피) 출간을 기념해 이메일로 만난 리사 시는 "그물이나 해초에 얽히거나, 도구가 바위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하는 위험을 안고도 해녀들은 매일 바다에 들어간다"면서 "그럼에도 많은 해녀가 '물 아래 있으면 세상의 자궁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소설은 주인공 '영숙'이 열다섯이던 1938년부터 여든다섯이 된 2008년까지 이어진다. 해녀 대장이던 영숙의 어머니는, 친일 협력자의 딸로 마을에서 미움받던 '미자'를 해녀 공동체에 받아들인다. 영숙과 미자가 함께 바다에 뛰어든 첫 순간부터 역사를 따라 변화하는 두 해녀의 우정을 그린다. 해녀들이 물 밖으로 올라와 터뜨리는 숨소리인 '숨비소리'나 휴식 공간인 '불턱'에서 농담을 나누며 그날의 수확을 정리하는 모습, 빗창(전복 따는 도구)·테왁(해녀가 사용하는 부표)·망사리(그물) 같은 도구 하나하나까지 제주 해녀의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미국판 표지로도 쓰인 두 해녀의 사진.

시는 10년 전 우연히 잡지에 나온 해녀 사진을 보고 소설을 구상했다. "작은 사진이었지만 할머니들의 강인함과 그들 사이의 유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2016년엔 제주도를 방문해 해녀들과 제주의 무당인 '심방', 제주 문화 전문가들을 취재했다. "여든둘의 해녀 할머니는 미역을 고르다가 저를 불러세워서 얘기를 들려줬어요. 아홉 명의 동생을 뒀던 할머니는 한겨울 블라디보스토크 바다로 원정까지 가서 물질을 해야 했대요. '물속에서 요리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며 자신이 얼마나 능숙한 해녀인지 들려줬죠."

소설 속 해녀들에겐 물질로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시는 "해녀는 자신들에게 닥친 고난에 용기와 유머 감각, 우렁찬 목소리로 맞섰다"면서 "독특하지만 용감한 해녀들과 어머니가 중심이 되는 제주의 모계 사회에 미국 독자들도 감명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영숙과 미자는 일제강점기 해녀들이 주도한 항일 시위, 남북 분단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가족을 잃고 이웃끼리 서로 등을 돌려야 했던 4·3 사건 등 한국 근현대사를 맨몸으로 뚫고 지나간다. 시는 "755쪽의 '제주 4·3사건 보고서'를 비롯해 읽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구해 살펴봤다"면서 "최대한 정확한 역사를 쓰고 싶었고 희생자 3만~8만명이라는 숫자가 담아낼 수 없는 실제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친자매보다 가까웠던 영숙과 미자의 우정은 잔혹한 역사 속에서 뒤틀리고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영숙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할지 돌아본다. 시는 "흔히 용서를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용서는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였다"면서 "용서할 때에만 우리는 폭력과 비극, 최악의 순간을 잊고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용서는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쪽과 이를 받아들이는 쪽이 동시에 필요하죠. 쉽진 않겠지만 우리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문학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용서가 가능할지, 왜 가능해야만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