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관악구에선 배송 박스와 같은 종이류 배출량이 전년 대비 65.1%, 일회용 용기 등이 포함된 플라스틱류는 69.9% 증가했다. 캔·병 재활용 폐기물이 각각 7.3%, 0.9%씩 줄어든 것과는 딴판이다. 이는 신선식품 배송·배달앱 이용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신선식품 배송이란 수시로 장을 봐야 하는 냉장·냉동식품 등을 주문한 지 하루 안에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관악구는 이런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1인 가구의 비중이 45%로 서울 25개 구 가운데 가장 높은 지역이다.

최근 신선식품 온라인 배송과 스마트폰을 통한 각종 음식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포장재·식품용기 폐기물이 급증하고 있다. 1인 가구 비중이 관악구보다 낮은 다른 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상반기 중랑구의 재활용 폐기물 처리량은 7529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동대문구(1~7월)는 106% 증가했다.

신선식품 익일 배송 서비스를 통해 7개 품목 4만5000원 정도의 식료품을 주문하자 15일 아침 집앞에는 각각 냉동·냉장·상온 식품을 담은 박스 3개가 쌓였다(왼쪽 사진). 냉동식품 1개를 위해 아이스박스 안에는 3개의 드라이아이스 보랭팩이 들어가 있었고, 냉장식품용 종이 박스는 보랭 효과를 위해 일반 박스의 두 배 두께였다. 오른쪽 사진은 주문한 식품(좌측 상단)과 박스·보랭팩·완충재 등 포장재를 펼쳐놓은 모습.

작년 초 중국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면서 '폐플라스틱·폐비닐 수거 대란'이 벌어진 이후, 커피전문점·대형마트·편의점 등은 포장재·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폭증하는 포장 폐기물에 묻혀 버리고 있는 것이다. 신선식품 배송 업체 등도 과도한 포장재로 인해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신선식품 업계 1위 마켓컬리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 1571억원에 영업손실 336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직원 급여는 74억원이었던 반면 포장비 관련 지출은 2.4배인 177억원이었다.

15일 새벽 4시 30분 기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박스 3개가 도착했다. 바로 전날 저녁 신선식품 배송 업체에 주문한 4만5000원어치 식료품 7개를 담은 박스들인데, 수직으로 쌓으니 높이가 70㎝였다. 냉동식품용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는 새우 한 봉지와 드라이아이스 보랭팩 3개가 들어 있었다. 상온 식품용 일반 종이 박스에는 과자 한 봉지와 빵이 들어 있었다. 내용물은 박스 부피의 3분의 1 정도였다. 전형적 '과대 포장'이다. 두께가 일반 박스의 2배인 냉장식품용 종이 박스에는 고추 한 묶음, 양송이버섯, 그릭요구르트, 콩나물과 함께 에어캡(일명 뽁뽁이)·보랭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플라스틱 폐기물 급증

신선식품 온라인 배송과 각종 음식 배달 앱 이용이 늘며 포장재·식품 용기 폐기물도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신선식품 배송은 일반 배송에 비해 배출하는 폐기물의 양이 많다. 일반 공산품류와 달리 배송 과정에서 신선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서비스의 핵심이므로 포장재와 보랭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9일 찾아간 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자원회수센터에는 스티로폼 박스 더미가 건물 3층 높이에 달했다. 신선식품 배송용 아이스박스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은 재활용을 위해 박스 표면에 붙은 종이 송장과 테이프를 제거하느라 분주했다. 바로 옆 플라스틱 분류 라인에선 빨간 국물 자국이 선명한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를 걷어내고 있었다. 브로콜리, 간고등어 등 음식물이 남아 있는 플라스틱 용기도 눈에 띄었다. 센터 관계자는 "신선식품 배송용 포장재 폐기물은 말할 것도 없고 배달 음식을 담는 각종 플라스틱·스티로폼 용기의 사용도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했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의 비중이 많은 것도 문제다. 보랭팩은 주로 재활용을 할 수 없는 미세 플라스틱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일부 업체는 냉장식품용 박스 내부에 비닐 성분의 은박이 코팅된 제품도 쓴다. 한 폐기물 처리 업체 관계자는 "은박을 제거하면 재활용할 수 있지만, 제거가 어렵다 보니 그냥 버려진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 가정에서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 중 재활용 처리되는 비중은 40% 정도다. 여기서 처리되지 못한 나머지 '2차 폐기물'은 일반 쓰레기처럼 소각 처리된다. 하지만 폐기물자원순환학회장인 이승희 경기대 교수는 "국내에 소각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처리 못 한 폐기물이 그냥 방치되고 있다"며 "이 중 일부는 동남아 등으로 무단 방출되거나 '의성 쓰레기산'처럼 몰래 버려진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에는 한국 폐기물 6300t이 필리핀으로 밀반출됐다가 현지 당국에 적발돼 다시 한국으로 반송되며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선 "한국이 필리핀에 쓰레기를 버렸다"며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 "10월에 대책 발표"

업체들도 폐기물의 양을 줄이고 친환경 포장재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 신선식품 익일 배송 서비스를 개시한 쓱닷컴은 재사용이 가능한 보랭 가방을 처음 주문하는 고객에게 무상으로 주고, 이후부터 고객이 집 앞에 걸어놓은 보랭 가방에 식품을 넣는다. 쓱닷컴은 "물류 시스템을 자동화해 제품 출고 후부터 배송 완료시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필요한 보랭팩 등 포장재의 양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마켓컬리는 내부에 은박 보랭 필름을 붙인 박스 대신 재생지를 활용한 냉장용 박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일부 박스와 보랭팩의 경우 고객이 내놓으면 업체가 다음 배송을 하며 이를 수거해가는 시스템도 갖췄다. 다만 실제 이를 통해 회수되는 비율은 전체의 10%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들이 아직 시범 운영 단계이거나 도입 초기라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올해부터 온·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제품에 들어가는 포장재를 모두 당국에 신고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회수와 폐기 방안을 내놓도록 하는 '신포장재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급증하는 포장재 폐기물 등에 대한 별도 대책이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신선식품 배송 포장재, 배달 음식 용기 등 재활용품에 대한 종합 감축 대책을 오는 10월쯤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