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 시점을 조작해 국회 답변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장수·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법원은 법정 질서 유지를 위해 선고 전날부터 법원 출입구에 이날 재판 방청권을 선착순 배부한다는 안내문을 고지했다. 재판 운영은 판사의 재량이다. 이에 따라 30여석의 법정 좌석은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받은 일반 방청객들과 취재진들로 꽉 들어찼다.

그런데 재판 시작 직전 노란색 옷을 입고 법정 앞에 도착한 세월호 유가족 10여명이 "언제부터 방청권이 있어야 재판에 들어갔느냐" "우리 자식들이 죽었는데 왜 재판을 못 보게 막느냐"며 법정 경위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소동이 시작됐다.

법정 경위들은 "원칙에 따라 방청권을 배부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았지만, 유족들은 "네 자식이 죽어봐야 알겠느냐"고 항의했다.

그사이 구치소 관계자들과 함께 파란색 수의(囚衣)를 입은 김 전 실장이 수갑을 차고 법정 앞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김기춘 아직도 살아 있느냐" "김기춘 개××"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김 전 실장에 대한 유족들의 욕설은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됐다. 여성 재판장인 형사30부 권희 부장판사는 법대에 앉으며 법정 밖 고함에 깜짝 놀란 듯했다. 법정 경위가 그에게 다가가 유족들을 들여보낼지를 논의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고, 그대로 선고를 시작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결문 낭독이 이뤄지는 한 시간 내내 법정 밖 유족들의 욕설과 고함은 계속됐다. 판결문을 읽는 권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법정 안에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유족들은 "김기춘 개×× 나와라" "판사 개××" "작살내라"라고 소리쳤고,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법정 출입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때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권 부장판사가 깜짝깜짝 놀라면서 수차례 판결문 낭독이 중단되길 반복했다.

급기야 방청객 중 일부가 재판부와 경위들을 향해 "왜 저들을 방조하느냐" "이래서 재판이 되겠느냐"며 항의했다. 경위들은 이들을 향해 "정숙하라"고 주의를 줬고, 방청객들은 "밖이나 정숙시키라"고 맞받았다. 경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법원 측 보안관리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유족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이날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장수 전 실장은 김 전 실장이 주도해 보고 시각을 조작한 공문서를 작성할 당시 이미 안보실장 직을 사퇴해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취지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위법한 방법으로 변경한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 전 실장에 대해서도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순간까지 법정 밖에서 고함을 치던 유족들은 판결 소식을 접하고 "권희 ×같은× 나와" "개××가 판결해도 이것보다 낫겠다" "이 재판은 무효다. 판사실 전화번호를 털자"고 소리쳤다. "법으로 안 되면 우리가 김기춘을 죽이자"고도 했다. 유족들은 재판이 끝나고도 30분간 법정 앞에서 김 전 실장과 재판장 등을 비난하다 돌아갔다.

일반 방청객들은 법정을 나서며 "어떻게 재판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했다. 법원 측은 이에 대해 "유족들을 물리력을 동원해 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