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본군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서 배우 한지민(37·사진)씨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유족의 편지를 대신 읽어나갔다. 정부는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중 처음으로 실명 증언한 것을 기리기 위해 작년부터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을 열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선 위안부 유족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가 공개됐다. 여성가족부가 실제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신 작성한 뒤 유족의 재확인을 받아 완성한 편지였다. 여가부 측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유족의 아픈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편지에는 위안부 피해자 유족의 고통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편지 속 유족은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평양이 고향이신데 전쟁 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자랑했다"고 했다.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실은 엄마가 참혹한 일을 겪었다는 걸 알았다. 유족은 "(처음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다"고 했다. 엄마의 만년이 그런 태도를 돌려놨다. 유족은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른다"며 "(증언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처절했던 시간에 대해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됐다"고도 했다.

이날 서울시는 중구 남산도서관 옆 조선신궁 터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을 세웠다. 키 160㎝ 정도인 소녀 세 명(각각 한국·중국·필리핀 복장)이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선 동상으로, 동상의 한쪽 부분은 시민들이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비워뒀다.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수면에 떠오를 때 맨 먼저 피해를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실물 크기 동상도 그 옆에 마련됐다.

일본 도쿄·대만 타이베이서도 동참 - 일본 '전시(戰時)성폭력문제연락협의회' 회원들이 도쿄 시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여성의 인권·평화의 미래를 연다! 진상 구명(규명)·사죄·배상·역사를 젊은 세대에게'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왼쪽). 같은 날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다수 여권(女權) 단체 회원들이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항의하는 내용의 대형 엽서를 들고 행진했다.
남산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 -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동상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도서관 옆 조선신궁 터에 세워졌다.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세 명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국인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를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의 할머니 동상은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일본을 규탄하는 행사는 이날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 옛 주일대사관 앞에서 '수요 집회'를 주최한 정의기억연대 측은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에서 행사가 진행됐다"고 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여성 운동가 수십 명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과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타이완포커스'가 보도했다. "일본 정부 사과하라"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시위를 주도한 타이베이부녀구원기금회(TWRF)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시스템 운영에 개입한 부분을 공식 인정하고 희생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여성 운동가 30여명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하는 거리 시위를,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74년 만에 벌였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