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전략물자 1735종에 대한 대일(對日) 수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 같은 발표를 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아베 내각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2차 보복 조치'를 취했던 지난 2일에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었는데 열흘 만에 '한·일 간 밝은 미래'를 강조하면서 발언 수위를 낮춘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 공존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국 국민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인권의 가치로 소통하고 인류애와 평화로 우의를 다진다면 한·일 관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여권 안팎에선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정부가 한·일 대치 구도를 탈피해 '숨 고르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정부가 '평화·인권' 등의 가치를 앞세워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인권이나 평화 같은 가치의 면에서도 모범이 되는 나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용이 담긴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성 장관은 일본에 대해 “국제 수출 통제 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용해 긴밀한 국제 공조가 어렵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민은)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대해 결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의 우호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숙한 시민 의식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어 "우리 선조들은 100년 전 피 흘리며 독립을 외치는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세계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여당에선 "재팬 엑시트(Japan Exit·탈일본)" "무리한 경제 도발" 등 여전히 일본을 겨냥한 강경 발언들이 나왔다. 이 때문에 재계(財界)에선 "대통령은 침착하게 대응하자고 하는데 정부와 당의 대책과 발언은 전혀 달라 혼란스럽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사태의 본질은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의 무리한 경제 도발이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며 "일본 내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탈일본 현상에 놀란 일본 기업들이 중국을 통해 우회 수출을 추진하는 이른바 재팬 엑시트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해찬 대표도 "이번 기회에 부품 소재 산업의 가능성을 키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역할 분담을 통한 '강온 전략'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