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화 정치부 기자

"지금 하는 얘기는 대개 외교부의 논리입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외교부 갖고는 안 된다 해서 우리 같은 사람을 투입했습니다."

지난 8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갈등 관련 토론회가 끝날 무렵 사회를 맡은 이수훈 전 주일 대사(경남대 교수)가 방청석에서 나온 코멘트에 대해 '공개 면박'을 주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보통 사회자는 방청석의 질문에 발제자나 토론자의 답변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지만 이 전 대사는 직접 답변에 나선 것이다.

질문자는 지난 2016년 중미 지역 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베테랑 전직 외교관 K씨였다. K씨는 "한국은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에서 (1965년) 한·일 협상에 임했고, 2015년 위안부 합의도 한·미·일 3각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 이뤄졌다"며 "우리가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K씨는 "국제법이나 국제 질서는 전승국의 질서인데 우리는 전혀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민족의 불운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현재의 한·일 갈등은 과거에서부터 잠재된 측면이 있고 상황 논리도 함께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이수훈 전 대사는 "전부 다 외교부의 논리"라며 "시대 흐름하고 맞지 않는 인식"이라고 했다. 장내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그는 이어 "그런 생각을 하는 외교부 갖고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동북아 협력도 안 된다 해서 정치인도 투입하고 저 같은 사람도 (대사로) 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발언 막바지에는 아예 "(문재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면 좀 강하게 얘기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정권이 무너졌으면 좋겠나"라고도 했다. 당황한 K씨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 전 대사는 "고쳐보자 해서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데…"라고 꾸짖었다. 2년 채 안 되는 주일 대사 경력뿐인 '어(쩌다)공(무원)'이 경력 20년 가까이 되는 직업 외교관을 나무라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전 대사는 자기 임기 동안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진 데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전직 외교부 관리는 "조직과 나라에 대한 걱정과 애정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세상이 됐다"며 "청와대의 외교부 불신이 극명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정부가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4강 대사 대부분을 현지어도 잘 못하는 '어공'으로 채우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외교는 '정권이 무너지면 좋겠냐'는 식의 '협박'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어느새 4강 외교에서 '동네북' 신세가 된 이유를 대사 인사에서부터 짚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