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의균

정신병원에서 병상이 사라진다. 병상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정신과를 없애기도 한다. 수요가 줄었다는 희소식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조현병 환자의 강제 입원, 장기 입원은 훨씬 까다로워졌다. 병원에 있어야 할 중증 정신병 환자 중 일부가 사회로 나오자 작년부터 끔찍한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 연말 서울 강북삼성병원 의사 피살 사건에 이어 올해 4월 발생한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6월 예비 신부의 꿈을 짓밟은 고속도로 역주행 충돌 사고는 법의 사각지대가 노출된 대표 사례다.

'아무튼, 주말'은 국회 김세연 의원실을 통해 정신병원 병상과 조현병 환자 통계를 보건복지부에 요구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전국 정신의료기관 병상은 모두 7만9257개. 2014년 말에 비해 4454개 줄었다. 서울대병원 등 43개 상급종합병원 정신과의 폐쇄 병동 병상은 2011년부터 2018년 사이에 1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현병 진단을 받은 성인 환자는 2014년 17만572명에서 지난해 17만7352명으로 늘었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밝혔다.

조현병은 2010년까지 정신분열증이라 불렀다. 어감이 나빠 병명을 바꿨다. 조율이 안 된 현악기처럼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조현(調絃)병이다. 특히 망상과 환청에 시달린다. 통계적으로 인구의 1%(평생 유병률)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수도권의 중간 규모 종합병원(200~300병상)에서 일하는 의사 A씨는 "매달 회의할 때마다 원장이 '정신과는 돈이 안 되고 계속 적자만 쌓인다'고 질책한다. 다른 병원들처럼 머지않아 폐과할 것 같다"며 "조현병 환자들이 밖으로 나오고 방치되면서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성 없으니 줄이고 없애고

정신과 병상을 줄이거나 폐과하는 종합병원이 실제로 늘고 있다. 대학 병원들은 레지던트를 훈련시키느라 어쩔 수 없이 정신과 병동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전문 정신병원들은 법이 허용하는 최소 의료진만 투입해 운영하고 중소형 병원들은 아예 폐과하는 경우가 많다. 100~300병상 규모 종합병원에서 정신과는 필수 진료 과목이 아니고 외래를 개설하지 않아도 된다.

공공 의료를 책임지는 지역 의료원들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전북 남원의료원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었지만 올 초에 의료진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서 사라졌다. 경기 파주의료원에도 정신과는 없었다. 전북 군산의료원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외래 진료만 가능하고 입원하려면 김제나 익산 등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수익성이다. 정신과는 병원 경영에 짐이 되기 일쑤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석 교수는 "3차 병원처럼 규모가 큰 종합병원에서는 정신과를 운영하느니 다른 과로 바꾸는 게 낫다"며 "여의도성모병원과 인천성모병원에서는 정신과 병동이 없어졌고 서울성모병원도 병상을 30% 축소했다"고 말했다.

여러 명을 짧게 진료하는 '박리다매'로 병원이 굴러가는 현실에서 환자와 길게 상담해야 하고 CT나 MRI 같은 장비를 통한 수입은 기대할 수 없는 정신과는 찬밥 신세다. 서울 어느 대학 병원 정신과의 건강보험 수가(酬價)는 10분 이하 상담이 1만3910원이었다. 김태석 교수는 "반나절에 환자 40명, 시간당 10명쯤 본다"며 "전문가의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은 게 문제다. 사람이 행하면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고 기계가 하면 돈을 제대로 지급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권준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잇따른 조현병 환자 사고에 대해 "탈원화(脫院化)로 방향을 틀었는데 맹점이 발견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소속되게 하겠다는 선의가 일으킨 부작용이다. 권 이사장은 "조현병 환자들을 지역사회가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지 않은 상태로 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라며 "만성기 환자 가운데 어느 정도 안정되고 보호자도 있는 경우라면 퇴원이 맞지만, 대학 병원과 중소 병원에서 급성기 환자가 입원할 병상이 줄어드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급성기 조현병 환자는 거칠게 소란을 피우기 때문에 만성기 환자보다 맨파워(의료진)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만성기나 급성기나 수가는 똑같다. 병원으로서는 받아 봐야 적자만 늘어나고 사고도 종종 발생하다 보니 병상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책임질 일 피하는 '방관의 카르텔'

지난 6일 서울 혜화 로터리 근처 주택가. 종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비탈진 골목길에 있었다. 전국에 243개가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중증 정신질환자 대면 업무의 최전선이다. 투약과 치료, 재활과 취업 등을 돕는다. 이곳 등록 회원 약 400명 중 조현병 환자가 절반이다. 센터는 조현병을 가진 미등록자를 종로구에만 500명 이상으로 추정했다. 응급 입원이 필요하다고 해 출동해보면 대부분 명단에 없는 환자라고 한다.

서화연 센터장은 "서울에 병상이 없으면 경기도까지 갈 정도로 응급 환자 이송 거리가 길어진다"며 "소방대원이 '이 정신병 환자를 이송하다가 다른 심정지 환자가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가 입원에 동의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체적 제압을 요청하는데 민원이나 법적 분쟁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방법에는 보호 입원, 행정 입원, 응급 입원이 있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은 직계 혈족(부모나 자식)이나 배우자가 없어 보호 입원이 불가능했다. 친형이 여러 차례 그를 입원시키려 했지만 실패한 이유다. 행정 입원은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와 경찰 동의를 받아 이뤄지는 응급 입원은 사흘 동안만 가능하다. 이후에는 보호 입원이나 행정 입원 절차를 밟아야 입원이 연장된다. 의사 B씨는 "치료를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자·타해(自·他害) 위험성이 분명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환자가 폭력을 휘두를 때까지 공포에 떨다가 병원에 데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안인득은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그는 과거 5년 동안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환자였다. 이 병력(病歷)을 법무부, 정신병원, 진주시가 알고 있었지만 어느 기관도 해당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알리지 않았다. 이웃에게도 위협적 행동을 반복해 신고했지만 경찰은 그를 정신병원에 넣지 않았다. 출동 당시 직접적 위협이 없는데 강제로 입원시켰다가 고소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정신건강복지법이 몸을 사리며 책임질 일은 피하는 '방관의 카르텔'을 만든 셈이다. "본인이 알리길 원하지 않았다"(정신병원) "우리는 알릴 권한이 없다"(시청) "주민 말만 듣고 정신병을 단정할 수 없었다"(경찰)….

막연한 공포, 개선 방향은?

조현병은 환자가 퇴원하고 약을 안 먹다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늘어나는데 병상은 줄어든다. 경기 시흥경찰서 전영도 경위는 "조현병 사고는 밤에 빈발하는데 정신병원 스무 군데 전화를 돌려 간신히 입원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정신병원 병상 상황을 응급실처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네트워크 마련이 필요하다.

대중은 불안하다. 법의 허점과 방관의 카르텔 속에 조현병 환자가 이웃에 살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막연히 위험하다는 낙인 효과가 커진다. 최근 경기도 오산에서는 정신병원 설립 허가가 취소됐다. 편견과 님비 현상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태석 교수는 "타인에게 공격적인 조현병 환자는 극히 드물고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는 더 안전하다"고 했다. 2017년 검찰청 범죄 분석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 중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0.136%. 같은 기간 전체 인구 범죄율(3.93%)보다 크게 낮았다.

서화연 센터장은 "조현병 환자는 입·퇴원할 때 가장 큰 노력이 들어가는데, 사흘만 입원하고 퇴원한다면 이득은 없고 수고만 많이 든다"며 "응급 입원에 대한 수가를 만들어 대폭 높이거나 응급 입원만을 위한 병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권준수 이사장은 "조현병 사건은 사회가 관리할 시스템은 못 만들고 보호자에게만 책임을 미뤄놓았다가 발생했다"며 "병에 걸린 사람의 인권은 빨리 치료해 돌려놓는 게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서 '사법 입원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최근 발의됐다. 환자의 강제 입원에 대해 의사가 소견을 제시하고 최종 판단은 미국처럼 법원(가정법원)이 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