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오고 있다.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부 장관은 9일 오전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찾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국 측 카운터파트(협상 상대)인 정경두 국방장관보다 강 장관을 먼저 만난 것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한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미 행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무 부처가 외교부기 때문이다.

에스퍼 장관 방한 직전인 지난 7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한국이 미국에 훨씬 더 많은 돈(방위비 분담금)을 내기로 합의했다"면서 "한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로, 이제 한국이 미국에 의해 제공된 국방에 기여할 의무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8일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에는 모호함이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더 기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에스퍼 장관도 이번 방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는 이날 강 장관과 에스퍼 장관의 회동을 완전 비공개로 진행했다. 외국 정부 고위 인사가 외교부를 찾아 장관과 면담을 하면 언론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모두 발언을 공개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날은 그러지 않았다. 에스퍼 장관과 강 장관 면담 일정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언론에 공개된 자리에서 에스퍼 장관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한 돌출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대응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이슈화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날 면담에서 양측은 미·북 비핵화 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 양국 간 전반적인 현안에 대해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면담에 외교부에선 윤순구 차관보, 김태진 북미국장, 정연두 북핵외교기획단장 등 미국 담당 주요 당국자들이 배석했다. 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에스퍼 장관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 측에선 다음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 측에 50억달러(한화 약 6조원) 수준의 분담금 부담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올해 분담금 1조 389억원의 6배에 이르는 액수다. 지난달 방한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주한미군 운용에 미 정부가 1년간 쓴 돈이 48억달러라면서 한국측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보도를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방위비 분담금은 (이제) 협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볼턴 보좌관이 명세서를 제시하며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