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자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일본을 비판했다. 그러자 차관급인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은 방송에 나와 적반하장 언급을 가리켜 "품위 없는 말까지 사용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일본에 대해 무례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3일 "차관급 인사가 상대국의 정상을 향해 이런 막말을 쏟아내는 게 과연 국제적 규범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맞받아치면서 양국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양국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된 이 논란은 문 대통령이 일본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적반하장'을 일본 언론 매체들이 사전적인 의미로 번역해 전달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불씨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발언을 '정색을 하면서 강하게 나온다(開き直る)'는 표현으로 의역해 전달했지만, NHK 등 상당수 일본 매체는 '도둑이 정색하고 뻔뻔하게 나온다(盜っ人たけだけしい)'라고 번역해 보도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거의 모든 TV의 시사 프로그램이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도둑으로 몰았다'는 내용으로 보도하면서 논란이 됐다.

마이니치신문은 "적반하장은 사전에도 '도둑이 정색하고 뻔뻔하게 나온다'라고 나와 있어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전문 통역사들의 의견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통역사 최은주씨는 "내가 번역한다면 적어도 '도둑'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적반하장은 상대방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뉘앙스는 '잘못을 한 것은 당신이지요'라는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적반하장'은 우리 생활에서는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씨는 "적반하장은 한국에선 여성들끼리의 언쟁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로 사토 부대신의 말처럼 품위 없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어·일본어 간의 번역에 '국민감정'이 이입돼 사태가 악화한 사건은 지난 2월에도 발생했다.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왕을 '전범(戰犯)의 아들'이라고 비판하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이 '한·일의원연맹의 회장까지 역임한 인간(人間)이'라는 말로 문 의장을 비판했다. 상당수 한국 언론은 문 의장을 '인간'이라고 지칭한 것에 대해 막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외교부도 "절제되지 않은 언사로 비난을 지속하고 있다"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말에서는 '인간'이 문맥에 따라 모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은 그렇지는 않다. 존중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막말이라고 여겨질 어감을 담고 있지는 않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같은 단어라고 해도 한·일 간 의미가 다른 것이 많으며 번역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상대국을 자극할 수 있다며 대표적 사례로 '인간' 사건을 소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