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드 자비드(50·사진) 영국 신임 재무장관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대비 예산으로 21억파운드(약 3조원)를 배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EU와 약속 없이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하기 위해 당초 예정보다 2배로 늘린 규모였다. 보리스 존슨이 새 총리로 취임하면서 재무장관으로 발탁한 자비드는 브렉시트 난국을 돌파할 존슨의 '핵심 병기'로 꼽힌다.

영국에서 재무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secretary of state)과 달리'챈슬러(chancellor)'라는 직함으로 부른다.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총리를 지칭하는 용어다. 총리에 근접한 명실상부한 '정권 2인자'인 것이다.

자비드는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버스 기사의 아들이다. 1961년 그의 부모가 파키스탄에서 런던 히스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진 것이라곤 1파운드짜리 지폐 한 장이었다. 아버지 압둘 가니 자비드는 버스 운전에다 여러 부업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별명이 '미스터 밤낮(Mr. Night and day)'일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고 한다.

자비드는 어릴 적부터 이재(理財)에 밝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주식 투자로 용돈 벌이를 했다. 엑서터대 경제학과를 나와 체이스맨해튼은행의 뉴욕지점에서 투자은행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도이체방크로 옮겨 38세에 아시아 지역 투자책임자 겸 이사회 멤버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2009년 정계 진출을 위해 사직했을 때 그의 연봉은 300만파운드(약 43억원)였다. 그가 곧 '브리티시 드림'의 실제 사례였다.

자비드가 대처로 상징되는 영국식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전통을 신봉하는 것은 이 같은 성장사와 관련이 있다. 노력에 걸맞은 성과가 있었다. 자비드는 집무실에 대처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일할 정도로 대처를 존경한다. 첫 여성 총리에 올라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소수 인종 출신인 자신에게도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

2010년 하원 의원에 당선된 자비드는 금융 담당 부장관을 거쳐 2014년 영국에서 아시아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장관(문화미디어체육부)에 임명됐다. 이때부터 '영국의 오바마'라는 평가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산업부 장관, 내무장관을 거쳤다.

자비드는 무슬림이지만 영국 내 백인들의 반(反)이슬람 정서를 의식해 모스크를 거의 찾지 않는다. 그의 아내는 순수 영국 혈통이며 기독교인이다. 영국 내 진보 진영은 "자비드가 주류 세력의 정서를 따르고 있어 소수 민족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라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