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2000년대 초 중국에서 몇 달 머물 때, CCTV 영어 채널에서 매주 방영하는 중국의 대표적 지성인·문화인들의 일대기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런데 이 학자, 사상가, 예술가들의 생애에는 예외 없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후반까지 공백기가 있었다. 말할 나위 없이 문화혁명기인데 '문화혁명'은 언급하지 않았어도 그 인물들이 당한 고난은 간략하지만 분명히 서술했다. 그 대목에서 내레이터의 목소리는 가라앉는 듯했다. 중국인에게는 얼마나 부끄럽고 원통한 일인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은 공산혁명의 순수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본가와 전통 계층을 숙청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광기 속에서 지식인이 무수히 희생된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마오쩌둥이 젊을 때부터 지식인을 원수처럼 미워했다는 것은 엔도 호마레의 책 '모택동―인민의 배신자'를 읽고 알았다. 마오쩌둥은 젊었을 때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를 했는데 그때 거기 드나드는 학생, 교수, 지식인들이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코민테른이 마오쩌둥을 별 볼일 없게 보아서 그는 중공중앙위원회 총서기 자리를 지식인 6명이 지낸 후에―자그마치 22년을 기다려서―차지했다. 이런 연유로 마오쩌둥은 신중국 탄생 이래 지식인을 박해하고 교육 제도를 파괴했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쿠데타를 일으킨 후에 프랑스 등지에 유학 가 있던 지식인들에게 편지로 '우리 같이 새로운 (이상) 국가를 건설하자'고 초빙해서 그들이 귀국하면 공항에서 체포하고 국내에서도 교육 좀 받은 사람은 다 체포해서 말할 수 없는 고문 끝에 죽여서, 인구의 5분의 1에서 3분의 1을 없앴다고 추산된다. 지식인에 대한 야수적 증오가 좌파 권력의 속성일까?

인간이 동물보다 몇 배, 몇십 배 양육 기간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육을 받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수는 한 마리가 터득한 기술이나 요령을 자기 새끼들이나 무리에게만 전파할 수 있지만 인간은 지식에 기반한 창의력으로 한 개인이 온 인류에게 혜택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에게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최고의 교육을 공급할 의무가 있다.

교육부가 이번에 서울시 8개교 등 자사고 10개교의 인가 취소를 확정해서 한국의 수월성 중등교육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국민의 지적 성장을 방해하고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반역·이적 행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