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선우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 여야(與野) 정치권의 휴가 반납도 이어졌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지도부, 정의당 국회의원 전원도 휴가를 사실상 취소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북한 미사일 발사 등 국가 경제·안보가 위기에 처했기에 휴가를 갈 수 없다는 명목이다. 정치 지도층이 일제히 휴가를 반납하고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모습은 국민 입장에서 보면 안도감을 주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이들의 휴가 취소를 마냥 미담(美談)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당초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4일까지 휴가를 내자 수행원들도 지난 2·27 전당대회 후 첫 휴가에 들어갔다. 그런데 황 대표는 휴가 이튿날 국회에 출근하며 운전 비서를 호출했다. 황 대표는 "택시를 타면 '정치 민원'을 들어야 해서 비서를 불렀다"고 했다. 수행 비서도 31일 국회로 복귀했다. 한 당직자는 "비행기·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대표의 복귀 소식에 손을 놨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휴가를 취소하면서 "직원들은 예정대로 휴가 가라"고 한 데 대해서도 젊은 층에선 "중국집에서 '먹고 싶은 거 주문해. 나는 짜장면'이라고 하는 부장님 같다"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 국무총리, 여야 대표의 '휴가 반납'은 관가(官街)·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한 정부 부처 공무원은 "대통령 휴가 취소 후 청와대 비서실, 부처 장차관들은 물론이고 국장, 과장급까지 '휴가 취소'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민간 기업 대관(對官) 담당자들도 "행정부·입법부에서 휴가를 안 가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여름, '17일 휴가'를 떠났다. 이란과의 핵 합의, 쿠바 국교 정상화 등 외교 현안이 산적한 때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8년 임기 중 1년 이상을 휴가로 썼고, 트럼프 대통령도 2017년 17일 '골프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위기 국면이라고 해도 관가와 정치권 전반과 사회 일각이 예정된 휴가 사용 여부를 두고 고민해야 되는 상황은 과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연차유급휴가 15일 보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휴식이 경쟁력"이라고도 했다. 국가나 조직의 지도자가 급박한 상황 때문에 휴가 일정을 연기할 순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아서는 성숙한 사회라 할 수 없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건, 누군가 휴가로 자리를 비워도 업무가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