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고수와 인공지능(AI) 간의 치수가 3점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인공지능 골락시와의 2점 공개 대국서 패할 때의 커제(왼쪽).

"3점을 깔고 둔 건 30년 만이네요. 초반에 아무 데나 두어도 이길 것 같던 압도적 우세를 못 지키다니…." 본격 기전 우승 경력자인 30대의 모 9단이 토종 AI(인공지능) '바둑이'에 패한 뒤 씁쓸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그만 당한 것도 아니다. 한국 랭킹 10~30위권의 상위권 기사들이 3점에 5집 덤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줄줄이 패했다.

현재 프로 고수와 AI의 적절한 치수(置數·핸디캡)는 몇 점일까. 한국 6위 변상일은 "현존 최강 AI로 인정받는 중국의 줴이(絶藝)와 종종 두는데 2점으론 승률이 나쁘고 3점으로 한 판 둬서 이겨봤다"고 했다. 삼성화재배 예선 출전 차 내한했던 대만 최강자 왕위안쥔도 "줴이에 2점 바둑 승률은 10% 정도"라며 "3점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세계 최강 트리오 중 한명인 신진서는 릴라제로를 상대로 매주 2~3판 호선(互先) 대국을 갖는다. 접바둑은 트레이닝 효과가 없다는 생각에서인데, AI가 버그(오작동)를 일으킬 때 외엔 이긴 적이 없다고 한다. "정식 승부를 한다면 2점을 놓고 두어야 하는데 그래도 약간 불리할 것 같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현역 세계 메이저 3관왕인 중국 커제도 인공지능에 2점 치수로 여러 번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1월 줴이와 둔 2점 바둑에서 대마가 잡혀 단 77수 만에 돌을 거두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작년 4월 중국 AI 골락시와의 공개 기념 대국서도 2점으로 졌다.

지난 2월 제23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 종료 후 우승자 양딩신은 인간 대 AI 간 적정 치수를 묻는 질문에 "3점 정도"란 견해를 내놓았다. 고등과학원 이주영 박사도 현재 양쪽 간 격차를 3점으로 본다. '바둑이' 개발자인 그는 "3점에 프로 최정상이 나서면 약간 우세하고, 세계 랭킹 50위권 기사라면 5대5 승부"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인간과 AI 간 치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흥미롭게도 "3점이 한계이고 4점으론 인간이 AI에 절대 지지 않을 것"이란 강한 공감대가 절대 다수 기사들 사이에 퍼져 있다. 온소진 변상일 최정 박하민 왕위안쥔은 "4점은 4귀를 모두 선점하므로 3점보다 월등한 구조"란 논리를 폈고 이주영 박사도 동조했다. 신진서는 "4점에 프로가 지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AI의 빠른 발전 속도로 볼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반론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2016년 '원조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파고 은퇴 후 등장한 줴이·골락시·릴라제로·엘프고·바둑이·AQZ 등 유명 AI들은 '말년 알파고'급 실력을 갖추고 무섭게 진화 중이다. 인간이 최후 방어선으로 설정한 '4점 벽'을 지켜낼지, AI가 그 벽마저 뚫어버릴지 앞으로의 전개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