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설계사 김모씨는 보험회사들 사이에서 '백내장 전문'으로 통한다. 그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고객은 죄다 가입한 지 1년만 지나면 백내장 수술을 받기 때문이다. 수술받는 안과도 정해져 있다. 김씨의 고객들은 백내장 수술을 보장하는 보험 여러 개에 미리 가입해 2000만~3000만원씩 챙겼다. 김씨 몫은 이 중 20~30% 정도다. 안과에서도 김씨에게 소개비를 건넸다. 일부 보험 가입자와 설계사, 병원이 얽힌 조직형 보험 사기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형으로 저질렀던 보험 사기가 최근 4~5년 새 조직화한 기업형으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환자가 병원에 며칠 더 누워 있는 정도의 '바늘 도둑'이었다면, 이제 보험 전문가가 주도해 수십억원씩 보험금을 빼먹는 '소도둑'이 됐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 사기 적발액은 7982억원으로 1년 전보다 9.3%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실제 피해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과 보험업계는 보험 사기 피해액을 2017년 기준 6조2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2010년(3조4000억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잠정 피해액을 우리나라 가구 수로 나누면 가구당 보험료 31만5000원을 보험 사기 탓에 더 내고 있다는 계산이다.

멀쩡한 눈에 손대는 '생내장' 수술 활개

기업화한 보험 사기의 대표 사례가 백내장이다. 백내장은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가 혼탁해져 물체가 겹쳐 보이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렸다면 '의료 목적'으로 수술할 수 있고, 실손보험에 들었다면 보험금이 나온다. 문제는 규정을 잘 아는 '꾼'들이 백내장 수술을 핑계 삼아 노안 수술이나 시력 교정 수술을 하면서 고액 보험금을 타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시력을 교정하는 수술은 보장받을 수 없는데도 백내장 수술인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낸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사 진단만 있으면 실제로 백내장인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맹점을 노려 일부 안과와 보험 설계사가 보험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 백내장 수술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 하는 수술이 백내장 수술이다. 올해 실손보험에서 백내장 수술비로 지급하는 보험금은 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년 전(938억원)의 다섯 배 이상이다. 서울에서 20년째 안과를 하는 개업의 A씨는 “보험금을 노리는 병원이 일반 시력 교정이나 노안 시술을 하면서도 백내장 수술을 권하는 일명 ‘생내장 수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했다.

굳이 필요 없는데도 ‘공짜 시력 교정’이라는 말에 현혹돼 수술을 받았다가 시력이 망가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경남 창원에 사는 정모(56)씨는 “실손보험으로 처리해 공짜로 수술해준다는 말에 (시력 교정용으로)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 걸어 다닐 때마다 눈앞의 사물이 흔들려 보이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했다.

보험 사기 규모 눈덩이…결국 소비자·보험사·병의원 모두에 '공공의 적'

한 술 더 떠 일부 안과에선 백내장 수술용 검사비를 부풀려 수익을 챙기고 있다. 백내장 수술 관련 검사는 병원이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이라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서울의 한 안과는 2017년 2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백내장 수술용 초음파 검사비를 10만원으로 정했는데, 같은 해 3월 중순에 270만원으로 올렸다. 같은 검사인데 보름 사이 진료비가 27배 뛴 것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 검사비는 병원에 따라 최고 173배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수정체 길이를 측정하는 계측 검사비의 경우 1만5000원을 받는 안과가 있는 반면 일부 의원에선 260만원을 청구한다.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초음파 검사비도 가장 싼 곳은 1만원인데, 가장 비싼 곳은 120만원이다. 일부 병·의원이 검사 비용을 부풀리는 바람에 백내장 수술(입원)에 지급된 보험금은 2015년 한 건당 69만6155원에서 2017년 202만2496원으로 세 배가량으로 뛰었다.

보험사들은 물론 금융 당국도 조직화하는 보험 사기가 결국 선량한 소비자, 보험 설계사와 보험사, 병·의원 모두에 피해를 주는 ‘공공의 적’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청과 금감원은 이달부터 올해 11월까지 대대적인 보험 사기 특별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소비자들은 보험 사기 때문에 가구당 3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더 물어야 한다. 보험 설계사나 병·의원 대부분은 보험 사기로 돈을 버는 일부 병·의원 탓에 신뢰도가 낮아져 영업에도 타격을 받는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지난 2월 회원들에게 백내장 보험 사기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백내장을 핑계로 한 보험 사기가 의료계 전반의 평판을 해칠까 우려한 것이다. 이성준 부회장은 “동료 의사가 보기에도 정당하지 않은 의료 행위여서 경고한 것”이라고 했다.

보험사들 수익이 악화되는 건 당연하다. 올해 1~5월 주요 손해보험사 6곳(메리츠·한화·삼성·현대·KB·DB)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31.5%에 달한다. 보험료로 100원 받았는데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이 130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이 보험사들은 올해 5월까지 실손보험에서 7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 박종각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 조사기획팀장은 “보험 사기가 계속 이어지면 결국 보험료가 올라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