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택 前지검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 1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회사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이날 새벽부터 일부 방송 등에서 '삼성바이오 임원, 분식회계 사실 첫 자백'이라는 제목의 '단독 보도'가 반복해서 나왔다. 김 대표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그 밑의 임원은 인정했다는 것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검찰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 대표의 영장은 기각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날은 작년 10월 26일이었다. 영장심사 전날부터 당일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임종헌, 문건 빼내라 지시' '임종헌, 차명폰으로 (판사) 입막음' 등의 내용이었다. 거의 '피의사실 생중계' 수준이었다. 임 전 차장은 구속됐다. 그가 구속 직후 수의(囚衣) 차림으로 포승에 묶인 모습까지 카메라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임 전 차장은 '인격 살인'이라고 검찰에 항의했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이 이번 수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피의사실 공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등 이목을 끄는 특수 수사를 많이 하는 검찰에서 심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이 유리한 피의사실을 언론에 '단독 보도' 형식 등으로 흘린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라고 했다. 검찰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가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피의사실 공표라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망신 줘 기를 꺾는 건 검찰의 단골 수법"이라고 했다.

대표 사례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꼽힌다. 검찰은 그가 부하 군인들에게 세월호 유족을 사찰하라고 시켰다면서 작년 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런 혐의는 여과 없이 언론을 탔다. 이 전 사령관은 작년 12월 3일 영장심사를 받으려고 서울중앙지법에 자진 출석했다. 그런데 검찰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에 세웠다. 영장이 기각됐는데도 그는 나흘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7년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수사 때는 검사들 사이에서도 "검찰이 너무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의 혐의는 국정원 파견검사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혐의에서부터 자택 압수 수색까지 수사 과정 전반이 외부에 알려졌다. 그는 주변에 "검찰이 언론에 사실과 다른 얘기를 흘리면서 나를 몰아가고 있다"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6일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이금로 법무부 차관은 국회에 나와 "무리한 수사는 없었다. 다만 대검에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한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피아제 손목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다수 언론이 보도하면서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노 전 대통령도 나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가 한창일 때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2011년 미국 국빈 방문 시 명품을 사는 데 쓴 (국정원 특수활동비) 규모가 3000만~4000만원 정도라는 (검찰) 진술이 나왔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른 사정(司正) 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초 직원 상습 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마커그룹 송명빈 대표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사 도중 피의 사실이 자세히 보도됐다. 관세청도 작년 5월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서울 평창동 자택을 압수 수색한 뒤 "영화에서 나올 만한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한진 측은 "그건 창고"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