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조 수석은 앞서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도 했었다. 여당 원내대표도 "한일전이 벌어졌는데 한국당이 백태클을 한다.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신(新)친일"이라고 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친일이라는 딱지부터 붙이고 나오는 집권 세력 버릇이 또 도지려 하고 있다.

조 수석은 "한·일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정부 입장을 뒤집으면서 혼란을 일으켰다는 지적에 대해 친일이요, 이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40년 만에 비밀이 해제된 한·일 협정 문서를 검토한 결과 "강제징용 문제도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을 내린 민관 합동위원회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위원장,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위원으로 각각 참여했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는 "대법원이 정부 입장과 다른 판결을 내놓아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조 수석은 다른 설명을 내놨다.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에 포함된 것은 적법 행위에 대한 보상이었고,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은 남아 있었다는 것"이라면서 2005년 민관위도 같은 판단을 했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이 참여했던 2005년 민관위 판단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새 논리를 개발한 듯하다.

그렇다면 노 정부는 왜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추가 보상 절차에 착수했나. 그 결과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그랬던 것 아닌가. 뒤바뀐 입장을 변호하려고 말을 만들면 앞뒤가 자꾸 꼬이게 마련이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고려 서희는 거란과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어냈고, 이순신 장군은 열두 척 배로 100척이 넘는 왜구 선박을 침몰시켰다. 문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한 외교 담판, 경제 전쟁에서 이런 쾌거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인가. 눈에 보이는 건 외적 앞에선 맥을 못 추고 돌아서서 국민을 편 가르며 분풀이하는 못난 모습뿐이다. 대통령 법률 참모 역할을 한다는 민정수석은 시대착오적 친일 딱지 놀음은 그만하고 일본의 숨통을 조일 비책을 내놔야 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진보 보수 따지지 않고 온 국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