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NCT 멤버 천러 이름 딴 '천러라면' 유행
"천러 왔던 곳"…자양동 중국 마트도 덩달아 인기
마라소스 판매량 6.8배 상승…마세권·혈중마라농도 신조어도

"천러라면 사러 왔어요?"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 중국 식자재 마트.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 이순선(50)씨가 이같이 말했다. 가게를 찾아오는 한국인을 보면 천러라면 재료 찾는 손님으로 짐작한다고 했다. 주로 국내 거주 중국인들이 식재료를 사러 오는 곳이지만, 최근엔 한국인들이 "천러라면 재료 사러 왔다"며 중국라면과 라오간마(老干妈·중국식 양념장으로 마라 소스의 한 종류) 위치를 매일같이 물어오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찾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 중국슈퍼마켓에 이른바 ‘천러라면’ 재료가 놓여 있다.

이씨는 "천러라면이 대체 뭔지, 몇 주 전부터 갑자기 한국인들이 똑같은 라면과 소스를 골라가, ‘한국에 중국라면 먹는 기념일이 새로 생겼나’ 싶었다"며 "최근에는 중국 손님보다 한국 손님이 더 많은 것 같다, 마라 관련 상품이 없어서 못 팔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1000원에 즐기는 간편한 마라라면…인증샷 열풍

천러라면은 아이돌그룹 ‘NCT’의 중국인 멤버 천러(18)가 유튜브에서 공개한 마라(麻辣) 소스 라면을 말한다. 천러가 지난 4월 유튜브에 일상생활을 담을 영상을 올리면서 "토마토와 라오간마 소스를 넣고 라면을 끓이면 맛있다"고 말한 것이 시초다.

이후 일부 NCT 팬들이 이 말을 토대로 소셜미디어(SNS)에 천러라면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소속사가 지난달 29일 유튜브를 통해 천러라면 레시피를 공개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특히 천러가 자양동 중국 식자재 마트를 찾아, 재료를 구입하는 장면이 영상에 등장하면서 덩달아 마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상은 총 32만여번 재생됐다.

아이돌 그룹 ‘NCT’의 멤버 천러(왼쪽)와 천러라면(오른쪽).

천러라면은 조리가 쉽고 재료가 저렴한데, 음식점 마라탕만큼 맛있다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1000원짜리 중국라면 1봉지와 280g당 3000원 하는 라오간마, 토마토가 재료다. 만드는 방법은 일반 라면 조리법과 비슷하다. 토마토를 으깨고 라오간마 소스를 한 스푼 넣어 육수를 내고, 중국라면과 스프를 넣고 3분을 더 끓이는 방식이다. 기호에 따라 계란을 넣는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선 "천러라면 만드려고 자양동 중국 마트 다녀왔다"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 마니아라면 꼭 맛봐야 한다" "맥주와 궁합이 좋다"는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천러라면을 해시태그(검색을 편리하게 하는 # 표시)로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도 150여개 검색된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천러라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NCT 팬 서모(29)씨는 "토마토와 마라소스 조합이 어색할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며 "한국라면 맛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자주 해먹는다"고 했다.

◇마라소스 판매량 577%상승…마라 인기 고공행진

천러라면의 인기는 마라 요리의 최근 상승세와 맥이 닿아 있다. 중국 사천 지역 대표 향신료인 마라는 마비를 뜻하는 ‘마(麻)’와 매운맛을 뜻하는 ‘라(辣)’가 합쳐진 단어다. 입안이 얼얼할 만큼 맵다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청양고추 매운맛과 달리 얼얼한 매운맛이 특징이다.

마라 요리는 2000년대에도 국내 일부 음식점에서 판매했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최근 들어서다. 사용자 참여형 맛집 추천 앱인 ‘식신’에 따르면 ‘마라탕’ 검색량은 지난달 1만878건으로 2018년(4122건)보다 약 2.6배, 2017년(1283건)보다 약 8.5배 늘었다.

마라 관련 키워드 검색량 추이.

마라 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에선 ‘마세권’(마라탕 음식점과 역세권의 합성어)이나 ‘혈중마라농도’(마라를 혈중알코올농도에 빗댄 표현), ‘마라 위크’(마라 요리를 먹는 주간), ‘마덕’(마라 덕후) 등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에서 마라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소스나 면 등을 판매하는 쇼핑몰도 늘었다. 실제 인터넷 오픈마켓 ‘G마켓’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마라소스 판매건수는 전년 대비 약 6.8배 늘었다. 같은 기간 G마켓에서 마라샹궈소스(볶음요리소스)는 약 6.6배, 중국당면은 약 6.8배, 훠궈냄비는 약 2.2배 각각 판매량이 늘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마라탕으로 해시태그된 게시물이 27만개에 육박한다.

17일 G마켓에 ‘마라’를 검색한 화면에는 총 1000여개의 관련 식품과 주방용품이 나온다.

요리연구가이자 푸트코디네이터인 이수연씨는 "국제적인 음식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최근 요식업의 큰 흐름"이라며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마라탕이 과거에는 국내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샀지만,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이어 "불경기라 맵고 짠 자극적인 요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도 최근 마라 요리의 인기 요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