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자인 동생이 해외로 떠나자 얼굴이 닮은 형이 8개월이나 실업급여를 대신 타냈다. 한 회사 대표는 가족 6명을 직원으로 채용해 정부에서 주는 고용촉진지원금, 고용안정지원금 등을 받아 챙겼다. 2017년 이후 고용노동부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에서 이렇게 황당하게 새 나간 돈이 8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A씨는 호주로 출국하기 직전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정부에서 매달 100만원 넘게 나오는 이 돈을 받으려고 얼굴이 비슷한 친형에게 "고용센터에 가서 대신 구직 활동 인정을 받아달라"고 했다. 신분증도 맡겼다. 친형이 A씨 행세를 한 덕에 A씨는 호주에서 8개월 넘게 실업급여 900만원을 탔다.

일가족 7명이 정부 일자리 예산을 빼먹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한 사업체 대표 B씨는 가족 6명이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꾸몄다. 유령 직원으로 등록해 고용촉진지원금과 고용안정지원금을 타냈다. 남동생 부부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급여까지 받았다. 가족 중 일부는 퇴사시켜 실업급여를 받아냈다. 이렇게 일가족 7명이 고용노동부에서 주는 7가지 지원금을 받아 총 5800만원을 챙겼다.

고용노동부는 17일 이런 자료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의원에게 제출했다. 지난 2017년부터 지난달까지 고용부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에서 부정이 적발된 금액이 859억8200만원이고, 올 상반기에는 163억원 정도로 집계됐다.

고용부 재정 지원 일자리사업은 크게 직접일자리, 직접훈련, 고용서비스, 고용장려금, 창업지원으로 나뉘는데 세부 사업은 무려 69개나 된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니 부정 수급을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단골 누수 항목은 실업급여 등이 꼽힌다. 올 상반기 동안 발생한 부정수급액 163억원 중 90% 가까이가 실업급여(101억원), 사업주직업훈련지원금(16억5000만원), 고용창출장려금(15억4000만원), 모성보호육아지원(13억원) 등 4개 사업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실업급여는 '전문 브로커'가 성행할 정도로 부정 수급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 부정 수급 전문 브로커가 43명에게 "명의를 빌려주면 공짜로 정부 지원금을 타게 해주겠다"며 정부로부터 총 2억3000만원의 구직급여를 타갔다 적발됐다. 그는 1인당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120만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시민의 제보로 적발되기 전까지 정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부정 수급은 이미 지능 범죄 수준을 넘어섰다"며 "부정 수급 전문 브로커가 수수료 30~40%를 받으며 '가짜 실직자'를 모집해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도록 해주는 부정 수급 '공생 관계'가 판을 친다"고 말했다. 수십 명이 연루돼 있어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데다 증거 자료를 은폐하고 말을 맞춰 적발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직장인이나 실업자에게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민간훈련기관들은 더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정부 돈을 빼간다. 한 직업훈련기관은 직원에게 훈련생의 아이디로 대리 수강을 하게 시켜 총 12억원의 지원금을 정부에서 받아갔다. 다른 훈련기관은 행정직원에게 훈련생 18명의 출석 체크를 대리로 시켜 2000만원 상당을 부정 수급했다. 교육 이수를 못 하면 정부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 훈련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아 대리 수강을 하고는 허위로 이수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출결 확인 등 관리 감독이 어려운 원격 훈련의 특성을 악용했다. 이처럼 개인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정부 돈을 타 먹기 위한 편법과 탈법이 횡행하는데도 고용부 재정 지원 일자리사업 예산은 2017년 11조9000억, 2018년 13조2699억, 올해 16조413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고용부의 재정 지원 일자리사업 평가를 분석한 결과, 지난 2년간 이 사업 고용 유지율은 60.4%, 취업률은 42% 등 성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진국 의원은 "정부 보조금은 줄줄 새는데 일자리사업의 주무 부처인 고용부는 예산을 매년 대폭 증액하고 있다"며 "'일단 쓰고 보자'는 선심성·무책임한 발상에서 벗어나 지원 단계에서부터 지급 방식을 점검하고, 제대로 된 적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