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시작된 후 첫 한·일 간 실무회의가 열린 곳은 마치 창고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12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본관이 아닌 별관 10층에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회의장을 만들었다. 회의장 한쪽 구석에는 간이 의자와 이동형 테이블이 포개져 놓여 있고 바닥에는 전선이 정리되지 않은 채 튀어나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수출 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고 쓰인 A4용지 두 장을 프린트해서 테이블 옆에 놓인 화이트 보드에 붙여 놓았다. '한국 정부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니 설명할 뿐 회의가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보여준 태도도 냉담했다. 경제산업성의 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猪狩克朗)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은 회의 시작 전에 먼저 착석했다. 그후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회의장에 입장했지만 이들은 일어서지도 않았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상부의 지시를 받은 듯, 악수를 하거나 명함을 교환하지도 않았다. 일본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가 여름에 실시 중인 셔츠 차림의 '쿨비즈' 복장 그대로 나타나 양복을 입은 우리 측과 대조됐다. 테이블 위에는 물 한 잔도 놓여 있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후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가 12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 별관에서 열렸다. 회의가 아닌 ‘설명회’라는 A4 용지가 붙은 화이트보드 양편에 양복 정장을 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오른쪽부터)·한철희 과장과, 노타이에 반소매 셔츠 차림의 일본 경산성 이와마쓰 준(왼쪽부터)·이가리 가쓰로 과장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한국 대표단 뒤엔 간이 의자들이 쌓여 있고, 일본 대표단 뒤쪽 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 보인다.

이날 회의는 순차통역 방식으로 오후 2시부터 7시 50분까지 6시간 가까이 열렸지만, 어떠한 접점도 찾지 못했다. 일본 측은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은 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일본 측은 '일부 일본 언론 보도처럼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 등 제3국에 수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일본 기업이 수출하는 과정에서 법령 준수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며 "국제 통제 체제 준수를 위해 일본 기업들의 수출 내용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지 한국에 대한 금수는 아니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우리 측은 지난 1일 전격 발표된 이번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반됨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또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물자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자료도 제시하며 일본 측에 규제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화이트 국가' 배제도 그대로 강행할 방침을 밝혔다. 이 정책관은 "일본 측은 '한국에 '캐치올(catch all) 규제' 도입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근 3년간 관련 양자 협의도 이뤄지지 않아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캐치올 규제란 민수용 품목 중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일 우려가 있는 품목에 대해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양국의 주장은 이날 평행선을 달려 다음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이 정책관은 "화이트국가 배제를 위한 의견 수렴 마감 기한인 이달 24일 이전에 국장급 양자 협의를 갖자고 요청했으나, 일본 측은 명시적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양측은 회의가 끝난 뒤 회의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딴판으로 설명했다. 일본 경산성 간부는 "한국 측으로부터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측으로부터) WTO 협정 위반 발언도 없었다"고 했다. 이는 한국 측 설명과는 상반된 것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왜 딴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