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미국 전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한 책 '팩트풀니스' 안나 로슬링 심층 인터뷰
세상이 나빠보이는 건 느낌 탓… 인구 75%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나쁜 뉴스 쏟아지는 이유, 언론의 고통 감시 능력 좋아져서
헬조선? 한국은 건강 소득 면에서 세계 최상위층 국가
통계 읽는 힘, 핵심 능력될 것… 데이터문맹 벗어나야

세계 지성계의 갈채를 받은 ‘팩트풀니스'의 공동 저자 안나 로슬링 뢴룬드(Anna Rosling Ronnlund, 44세).

"언론이 건전한 소식과 합리적인 통계를 내보내도 사람들은 부자의 행태나 끔찍한 재난 같은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찾아냅니다. 언론보다 독자의 두뇌가 나쁜 뉴스를 원하기 때문이죠."

전 세계 40개국에서 100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Factfulness)’의 공동 저자 안나 로슬링 뢴룬드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안나 로슬링은 세계적인 스웨덴 보건학자이자 통계학자인 고(故) 한스 로슬링(1948~2017)의 며느리. 시아버지 한스 로슬링, 남편 올라 로슬링과 함께 펴낸 '팩트풀니스'는 지난해 빌 게이츠가 통 크게 미국의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하면서 화제가 됐다.

‘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이라는 말로 팩트에 근거한 사고법을 의미한다.

책은 흥미로운 질문지로 시작한다. 극빈층 비율, 기대 수명, 재해 사망자 수, 예방 접종 등 각 분야에서 세상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묻는 13개의 테스트다. 결과는? 노벨상 수상자, 기업인, 언론인, 정치가 등 엘리트들의 절대다수가 ‘세계는 더 나빠졌다'는 오답을 냈다.

지식이 높고 낮고를 떠나 대중의 평균 정답 비율은 16%였다. 무작위로 찍어서 33%를 맞춘 침팬지보다 낮았다.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폭력적이며 가망 없는 곳으로 인식했다.

통계학과 세계 보건의 권위자인 한스 로슬링, 구글 데이터팀의 책임자로 일한 올라 로슬링, 구글의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한 안나 로슬링… 세 명의 로슬링 패밀리는 정확한 통계와 비주얼 차트로 무장한 채, 우리가 왜 침팬지보다 못한 인식 수준을 보였는지를 친절하게 증명해낸다.

요는 세계는 사실 여러 면에서 놀라운 진보를 이뤄냈지만, 우리의 두뇌가 위험하고 부정적인 사건에만 반응하는 탓에 낡은 세계에 머무른다는 것.

‘팩트풀니스'는 출간과 동시에 통계와 심리에 관한 역작으로 갈채를 받았다. ‘옵저버'는 금세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고, 버락 오바마는 "편견을 넘어 사실을 밝혀낼 때 인간은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책"이라고 추켜세웠다.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나아진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를 증명하는 책 ‘팩트풀니스' 하버드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극찬을 받았다.

프레임 뉴스와 선별된 통계에 지친 한국 독자들이 ‘사실충실성'에 갈증을 느끼던 무렵,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안나 로슬링이 방한했다. 그는 눈앞에 뉴스가 아닌 ‘큰 그림을 볼 것'을 강조하며, ‘팩트 중심 사고'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덜어줄 것이라고 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안나 로슬링은 현재 남편인 올라 로슬링과 함께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알리는’ 갭마인더 재단을 이끌고 있다.

-‘팩트풀니스'가 놀라운 건 통계와 공중 보건, 구글 데이터 디자인의 합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모든 건 우리의 좌절에서 시작했습니다(웃음). 사람들은 왜 세상을 오해할까? 왜 최악의 상황만 볼까? 생각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자연스럽게 통계와 심리를 연결하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한스 로슬링 박사는 세계적인 통계학자이자 낙후 지역을 돌본 보건의사였습니다. 당신에겐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 시아버지인 한스는 노동계급 출신이었어요. 하역 노동자인 부친에게 "삶은 힘들고 지루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놀랍게도 의사가 돼서 전 세계 낙후 지역을 돌며 의술을 펼쳤습니다. 저 또한 한스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땐 여름 휴가나 여행은 꿈도 못 꾸었죠.

16살에 남편인 올라를 만났고 그때부터 한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죠. 한스와 20년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기후와 환경 문제를 제외하고는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 세계 극빈층, 재해 사망자 수, 교육 수준, 예방 접종 등을 묻는 당신들의 13가지 공식 질문에서 저는 절반 이상을 맞췄습니다. 다행히 침팬지보다는 나았어요(웃음). 독일 철학자옌스 바이드너의 ‘지적인 낙관주의자’와 하버드대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은 덕분입니다. 비관주의자들은 습관적으로 공포를 부추기지만, 세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오! 그렇군요. 스티븐 핑커는 ‘팩트풀니스'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폭력성이 얼마나 줄어들었는가를 연구한 핑커의 책에서 큰 영감을 받았어요."

-반면 대표적으로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는 AI로 인한 실업과 불평등을 지적하며 나쁜 미래를 내다보지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공포를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엔 동의해요. 공포와 비관은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니까요. 그에 비해 사람들은 저희에게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니냐?’ 비판을 하죠. 제 대답은 낙관도 비관도 위험하다는 거예요. 팩트를 따르면 돼요. 데이터가 말하는 대로 봐야죠."

데이터에 따르면 빈곤, 교육, 환경, 에너지, 인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류는 놀라운 진보를 이뤘다. 세계은행과 유엔이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인류의 91%가 중간소득 이상의 국가에 산다. 재해 사망률은 10분의 1로 줄었고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은 1970년대와 비교해 100분의 1이다. 전 세계 문맹률은 10%에 불과하며, 세계의 모든 아동이 예방접종을 받는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이라는 말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습니까?

"어느 날 제 남편과 여름 별장인 오두막으로 여행을 떠나던 도중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마음챙김센터를 지나게 됐어요.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보듯이, 팩트를 정확히 들여다봐야 사고의 힘이 생긴다는 데 착안했어요. 세상이 나빠 보이는 건 부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을 크게 보는 뇌의 본능 탓이니까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 탓입니다다.” 안나 로슬링은 구글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했고 현재 갭마인더 재단의 부사장이다.

로슬링은 팩트에서 벗어난 부정적 세계관을 갖게 된 이유로 간극 본능, 부정 본능, 공포 본능, 다급함 본능, 비난 본능 등 10가지 두뇌의 인지 오류를 제시한다.

예컨대 간극 본능은 이분법적 사고를 만들어낸다. 이 세계의 91%가 이미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있지만, 우리 두뇌는 여전히 세상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두 개의 간극으로만 이해한다. 극빈층과 억만장자만 주목하는 식이다.

‘공포 본능'과 ‘부정 본능'은 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에 반응한다. 2009년 신종플루로 수천 명이 사망했을 때, 언론은 이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6만3066명이었다. 눈앞의 숫자만 과장해서 현실을 왜곡하는 ‘크기 본능', 위기의식과 스트레스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끌어내는 ‘다급함 본능'은 모두 ‘팩트풀니스'의 적이다.

-당신 생각에, 뇌의 오해 본능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공포 본능, 다급함 본능과 함께 크기 본능입니다. 어떤 사건을 볼 때 항상 비교 수치를 함께 봐야 해요. 맥락 없이 하나의 사례만 보는 게 가장 위험합니다."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이분화하는 것도 30년 전의 낡은 틀이라고요. 전체 국가를 소득 수준에 따라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나누는 방식은 ‘중간 풀'을 강조하기 위해선가요?

"좀 더 체계적인 분류가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엘리트 학생은 물론 유엔이나 다보스 포럼에서 만난 각국의 지도자들조차 서양의 바깥은 모두 빈곤국이라는 인식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세계를 4단계로 나눴어요.

1인당 소득 수준이 하루 2달러 미만이면 1단계 국가, 2~8달러는 2단계, 8~32달러는 3단계, 32달러 이상이면 4단계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현재 1단계인 저소득 국가엔 10억 명이, 2~3단계인 중간 소득 국가에 50억 명이, 그리고 한국과 스웨덴을 포함한 4단계 고소득 국가에 10억 인구가 살고 있어요."

안나와 올라 부부는 숫자가 담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해 2가지 시각 자료를 고안했다. ‘달러 스트리트'와 ‘물방울 도표'다.

50개국에서 잠자리, 식사, 이동수단 등을 찍어서 보낸 사진 자료를 4단계 소득 수준에 맞춰 시각적으로 비교 정리한 ‘달러 스트리트'와 각국의 소득과 수명을 그래프화한 물방울 도표를 보면 지구의 현재가 한눈에 보인다. 한국은 일본보다 허약하고 미국보다 건강하며, 이스라엘이나 스페인보다 부유하다.

소득을 가로축 수명을 세로축으로 완성한 물방울 도표. 오른쪽 위로 갈수록 건강하고 부유한 나라. 쿠바는 빈곤한 나라 중 가장 건강하고 미국은 부유한 나라 중 가장 허약하다. 북한은 왼쪽 중간 부분, 한국은 오른쪽 윗부분 영국 이탈리아 등과 가까이 있다.

-달러 스트리트와 물방울 도표로 세계를 편견 없이 보고 난 후 무엇을 깨달았나요?

"들여다보면 사는 건 다 비슷해요. 사람들은 특정 문화권에 따라 생활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편견입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죠. 물방울 도표는 시간의 궤적을 보여줘요. 시간의 추이에 따라 큰 그림으로 데이터를 보면 그 나라의 발전이 보이죠. 새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비상하듯이요."

-소득과 건강 측면에서 의외의 발견이었던 나라가 있습니까?

"칠레가 보건과 교육에서 굉장한 진전을 이뤘어요. 제가 놀란 건 엄청난 진보를 이룬 나라가 다 민주주의국가는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경제적 진보를 이뤄낸 지도자가 있어도, 그 외 환경은 낙후된 나라도 많았죠. 모든 일엔 복잡성이 있어요. 데이터를 통해 세계를 다차원적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정치와 미디어가 ‘사실충실성’을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언론은 극적으로 과장된 세계관을 양산하니, 뉴스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조언에 씁쓸해지더군요.

"(미소지으며)저는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뉴스는 매일의 예외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게 일이죠. 글로벌 차원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좋은 뉴스는 특별한 해프닝이 없는 한 뉴스거리가 안돼요. 언론이 건전한 소식과 합리적인 통계를 앞에 내보내도, 사람들은 부자의 행태나 끔찍한 재난 같은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찾아낼 거예요. 언론보다 언론의 소비자가, 소비자의 두뇌가 나쁜 뉴스를 원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학교에서 더 큰 그림, 팩트를 기본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해요."

데이터의 시각화를 보여주는 ‘달러 스트리트’. 스웨덴의 주방, 르완다의 침실, 페루의 화장실은 어떤 모습일까? 4단계 소득 수준에 따른 삶을 시각화하기 위해 안나 로슬링은 전 세계 50개국 300개 집에 사진 작가들을 파견했다.

-당신은 주로 무엇을 통해 세상을 보지요?

"각 나라의 큰 데이터 세트를 봅니다. 의료, 교육, 실업 등등의 통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비교해가면서요."

-일반인들은 접근이 어렵겠군요.

"아니요. 유엔과 세계은행의 시스템에 접속하면 모든 데이터가 공개돼 있어요. 생각보다 세계의 큰 그림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다만 저는 그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분류하고 세팅해서 해석의 틀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사람들은 해마다 경제 불황과 실업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장기 데이터로 큰 그림을, 뉴스로 작은 그림을 보면 보다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언론은 항상 그 시점에, 그 나라 중심의 보도를 하게 마련이죠. 시간의 추이와 함께 월드와이드로 보면 사건과 상황의 크기를 읽을 수 있어요. 항상 주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봐야 합니다."

-통계를 읽는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앞으로 데이터 해석 능력이 글을 읽는 능력만큼 중요해질 거예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핵심 직무능력이 될 겁니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다는 통계학자의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특히 아프리카의 비전이 흥미롭더군요. 아프리카 극빈층은 20년 안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50년 뒤면 그들이 유럽에서 난민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환영받을 거라고요. 믿을만한 예측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일어날 수도 있는 기적입니다. 1960년대 아시아를 생각해보세요. 굶주리고 자연재해에 찌들었어요. 지금 같은 발전이 있으리라 상상했습니까? 물론 아시아는 교육열이 높고 지리 조건도 다르죠. 하지만 아프리카도 고정된 상태에 머물지 않아요. 도전은 있지만, 우상향하고 있어요. 게다가 그들은 인구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일단 중간 소득 국가와 저소득국가의 인구 증가는 기업가들에게 중요한 팩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죠. 4단계 국가들(이름하여 선진국)이 세련된 제품 개발에 몰두하지만, 그 소비 시장은 정체된 10억 인구예요. 지금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력이 성장하는 주요 소비층은 1~3단계의 중간 소득과 저소득 국가죠. 그들의 수요를 예측해야 합니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어요.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메가트렌드'로 유명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도 ‘힘의 이동'에서 같은 말을 했어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신흥국 시장이 세계 경제의 동력이 될 거라는 거죠. 2030년엔 전 세계 중산층 인구가 49억 명까지 증가하는데, 이 중 64%가 아시아 인구가 될 거라고요.

"맞습니다. 기업은 AI가 목소리로 집안을 관리하는 최첨단 시스템만 몰두할 때가 아닙니다. ‘가성비' 좋은 튼튼한 생리대를 만드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더 넓은 소비 시장을 봐야죠."

-우리가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또 간과했던 게 있을까요?

"(미소지으며)사실은 초보적인 게 가장 중요해요. 미래라고 하면 로봇만 있는 첨단 사회를 꿈꾸지만, 사실 빈곤 없는 사회라는 것도 중요한 이슈거든요. 아직도 인구의 10%가 극빈층이고 대개 분쟁 지역에 있어요. 그들에게 신발, 자전거, 실내 전등을 공급하고 위생과 교육을 제공하는 게 모두의 풍요로운 미래를 앞당기는 빠른 길입니다. 비용도 덜 들고요(웃음)."

-우선은 보통 사람의 두뇌는 근미래에 AI로 자기 직업이 없어질까 두려워합니다(웃음).

"유일한 진리는 사회는 안정된 상태 그대로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는 거죠. 출판이 자동화되면서 과거 식자공들도 직업을 잃었죠. 자동화 물결에 휩쓸렸지만, 그들은 다른 일을 배웠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어요. 세상은 완벽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좋을 수도 없어요. 리스크도 보지만 극복 방법도 함께 봐야 해요. 유토피아 아니면 디스토피아, 미래는 두 가지로만 존재하지 않아요."

-자동화 관련해서 혹시 통계적으로 발견한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저희는 과거 데이터를 주로 봅니다. 미래 예측은 못 해요. 다만 자율주행에 관여한 최전선의 전문가 의견을 들은 적이 있어요. 완전한 자율주행은 20년 후가 될 거라고들 하죠. 20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통상 ‘20년 후’라고 할 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예상해야 합니다(웃음)."

-여전히 테러, 재해, 가난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겐 뭐라고 설명합니까?

"테러는 공포 본능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뉴스예요. 마치 상어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쇼크를 주죠. 하지만 자연재해, 항공기 사고, 테러… 이중 연간 총사망자의 1%를 넘는 경우는 없어요. 공포 본능을 버리고 실제 사망자 수를 봐야 합니다. 재해사망률도 1970년대와 비교하면 10분의 1수준입니다. 예측과 구조 시스템의 경이로운 발달 덕분이죠.

오히려 뉴스에 안 나올 뿐 예방 가능한 질병, 가령 결핵으로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리고 가난? 세계 인구의 75%는 저소득도, 고소득도 아닌 중간소득 국가에 삽니다. 그게 팩트예요.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세계관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안나 로슬링.

-팩트에 근거한 삶이 스트레스를 줄일 거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실제 삶은 어떤가요?

"14살이 된 큰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환경오염 다큐멘터리를 보고 왔어요. 요즘 다큐는 정확한 팩트를 보여주기보다 감정을 극적으로 몰고 가죠. 끔찍한 쓰레기 산을 보여주고 비극적인 피아노 배경 음악을 까는 식입니다. 아들이 "더 큰 그림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화를 냈답니다. "너는 지구가 걱정도 안 되니? 무정하다"는 거죠."

안나로슬링은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요는 부정적 상상력은 차단해도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더란다. 여전히 공포에 흔들리는 다수의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미래는 팩트를 기반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될 거예요. 지금은 걸음마 단계라 인식의 충돌이 있지만, 사람들은 더 빨리 데이터 문맹에서 탈출하게 될 테니까요."

-대한민국 청년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충실성의 관점에서 당신이 본 한국은 객관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큰 그림을 보면 물방울 도표에서도 한국은 최상위층입니다. 4단계 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건강하고 부유한 나라지요. 하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짧은 시간에 급속도의 발전을 이뤘어요. 한 세대가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자동차로의 진보를 모두 겪었습니다. 그 빠른 속도에 비해 청년 세대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고 정체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앞서간 다른 국가들의 데이터 추이를 보면 경제 성장은 통상 행복을 증진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멈춥니다. 한국도 물적 진보보다 가치 지향적인 행복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거죠. 20년 전, 제 남편 올라가 한스에게 물었어요. "아버지, 제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때 한스의 대답은 이랬어요. "일단은 네가 행복해져라." 동문서답 같았지만, 정답이었습니다."

‘팩트에 근거해 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 사려 깊은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책을 끝맺지 못하고 2017년 2월에 작고했다. 그를 대신해 안나 로슬링은 책의 맺음말을 썼다.

느리고 험난해 보여도 모든 건 개선되고 있다고. 이 세계엔 여전히 잠재적 위험이 많지만, 출근길에 노래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우려와 환희’라는 감정은 얼마든지 동시에 품을 수 있다고.

사실충실성 포인트
사실충실성은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충실성은 그 통계가 달랑 하나라는 걸 알아보고 다른 관련 있는 수치와 비교하는 것이다. 사실충실성은 최선과 최악이 있을 때는 그 중간 정도를 예상하고 여러 가능성의 범위를 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