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다툼으로 시작한 한·일 분쟁이 경제·안보 영역으로 급속 확산 중인 가운데 미국이 유엔군사령부에 일본의 참여를 검토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유엔사는 6·25 참전 관련 17개국으로 구성되며, 일본은 구성원이 아니다. 다만 일본엔 유사시 유엔군의 병참·관문 기지 역할을 할 유엔사 후방 기지 7곳이 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11일 발간한 '주한미군 2019 전략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미군은 유엔사를 소개하며 일본과 관련된 내용을 이례적으로 실었다. '전략 다이제스트'는 "유엔사는 감사 및 조사, 감시, 정전협정 교육, 비무장지대 접근 통제, 외국 고위 인사 방문 통지 및 지원 임무를 강화하기 위해 유엔 전력 제공국의 병력 증원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유엔사는 위기 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사가 일본을 통해 전력 지원을 받는다고 명시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 문구가 논란이 되자 "유엔사의 번역본이 아닌 원문에는 '유엔사는 위기 시 일본을 통해 필요한 지원·전력을 받는다(UNC continues to ensure the support and force flow through Japan that would be necessary in times of crisis)'고 돼 있다"며 "유엔사 후방 기지로서 일본의 원론적 역할을 재차 강조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유엔사가 영어를 한글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는 취지다. 국방부는 "일본은 6·25전쟁 참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 제공국으로 활동할 수 없다"며 "유엔사 참모 요원으로 활동을 할 경우에는 당연히 우리 국방부와 협의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전략 다이제스트'의 유엔사 소개 항목에 일본 관련 문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는 말이 나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문제에서 일본의 역할을 기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최근 미국은 일본에 '안보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추세"라며 "미국의 중국 포위 구상인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유엔사 확대·강화를 원하는 미국이 일본의 참여를 내심 기대하는 기류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미국의 유엔사 강화·확대 움직임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를 대비하는 포석이란 관측도 있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쥐고 있던 전작권이 우리 군으로 전환되면 연합사는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로 개편된다. 전시에 유엔사는 유엔사 후방 기지를 통해 한반도로 집결한 병력을 미래연합사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군 대장이 지휘하는 미래연합사의 전시 대비 능력이 충분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강화된 유엔사를 활용해 전작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유엔사 참여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치적 타협에 의해 전작권을 전환하더라도 현실적인 작전 주도 능력이 없으면 유엔사로 작전권이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군에서는 유엔사 측의 문구를 두고 '오역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엔사는 지원국으로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해 명시한 것인데, 이를 확대 해석해 전시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進駐)가 가능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군 관계자는 "미국도 한국의 반일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입성 논의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섣불리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일본이 유엔사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지상군 입성은 어려울 것"이라며 "해상 지원 정도 수준만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 역시 이를 의식해 "일본의 참여는 논의된 바 없고, 검토한 바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