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학 병원 응급실은 중증 환자가 가는 곳과 경증 환자가 가는 곳이 철저히 나눠져 있다. 중증과 경증 두 응급실이 각각 다른 건물에 있는 대학 병원도 있다. 그만큼 생명이 분초를 다투는 중증 응급 환자가 경증 환자가 북적거리는 틈에 끼여 늦게 처치받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중증 응급 환자만 보는 응급실은 마치 중환자실과 같은 풍경이다. 응급의학과뿐만 아니라, 내과,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 등이 대기하고 있다가 초응급 환자 처치에 즉각적으로 나선다. 중증 환자용 응급실에는 119 구급차로 실려온 환자만 올 수 있다. 구급차가 오지 않을 때는 응급실 문을 닫아 놓을 정도로 중증 환자 전용이다. 경증 환자 응급실은 진료 위주로 마치 외래처럼 운영된다.

119 구급대는 응급 환자 이송 현장에서 중증도를 판단하여 그에 맞는 병원 규모를 선택해 이송한다. 의식 유무, 혈압, 맥박, 출혈 정도, 외상 크기 등을 현장에서 평가하는 중증 분포표 점수를 앰뷸런스에 실은 컴퓨터에 입력하면, 근처 병원 중 어디로 이송해야 하는지 표시되고 길 안내가 나온다. 구급차는 그대로 가면 되기에, 왜 이 병원으로 이송했느냐는 식의 논란이 없다. 즉 중증도가 최고면 근처 구명구급센터(주로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가고, 중증도가 낮으면 동네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된다. 중증도와 상관없이 마치 택시처럼 환자가 원하는 병원으로 119 이송이 이뤄지는 우리나라 상황과 대조된다.

중증 환자 이송 시에는 119 구급대가 구명구급센터에 환자 도착 예정 시각과 환자 상태를 의료진에게 미리 알려주어 대비토록 한다. 구명구급센터에는 소방청에서 파견된 119 구급대원이 근무한다. 이들은 중증 환자 싣고 오는 구급차 구급대원과 응급센터 의료진의 조율을 맡아 도착하자마자 원활한 응급 처치가 이뤄지도록 한다. 이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는 중증 환자 처치 규모에 따라 구명구급센터에 예산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