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은 고려대 이한섭 명예교수가 1970년대부터 연구해 온 결과물을 집대성한 책이다. 1880년대 이후 우리말처럼 돼 버린 일본어 3634개 단어를 소개했다. 이 어휘들 중 90%가량은 우리말 발음으로 들어왔다. 교육, 가족, 국민 같은 단어들이다. 나머지는 일본어 발음으로 들어왔다. 모나카, 만땅, 무데뽀 같은 말이다. '마호병'처럼 일본어와 우리말이 결합한 말도 있다.

▶경기교육청이 관내 초·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다며 '수학여행' '파이팅' '훈화' 같은 단어들도 일본에서 왔으므로 일제 잔재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일제 잔재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문장에서도 '본인' '개념' '청산'은 일본에서 온 단어다. '단어'도 일본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공부해 박사를 땄다. 도이칠란트를 '독일'이라고 번역한 것도 일본인들이다. '대학' '대학원' '신학' '종교' '박사' 모두 일본에서 온 말이다. 국어·영어·수학은 물론 과학·철학·물리·역사·미술·음악·체육도 그렇다. 심지어 '대통령'이란 단어도 일본인들이 'president'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일본은 1773년 네덜란드어로 쓴 의학서를 번역한 '해체신서'를 펴냈다. 일본 최초의 서양책 완역본이다. 이 책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번역과 사전 편찬에 대한 욕구를 분출시켰다.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일본은 영일사전을 내놓았는데,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liberty'를 '자유(自由)'로, 'economy'를 '경제(經濟)'로 번역하는 일은 일본에 없던 관념을 만들어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단어들이 개화기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강제로 대량 유입됐다. 해방 후에도 일본인이 번역한 단어들은 계속 들어왔다. 나라를 세우려면 일본 서적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가 나오는 골프공 광고에서 우즈는 "좋아요, 대박"이라고 말한다. 싸이 노래 덕분에 서양인들은 '강남'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교류하는 시대에 언어가 섞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우리말을 해치는 일본어와 일본식 표현은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완전히 한국화돼 일상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쓰는 말들까지 '일제 잔재'라고 쓰지 말자면 어쩌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