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74)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한·일 관계는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때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최대의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지난 5일 본지 도쿄 지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은 양국 수뇌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기에 이 심각성을 양국 국민이 깨닫고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5일 본지 도쿄 지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답하고 있다. 그는 "(사태 악화를 막으려면) 심각성을 양국 국민이 깨닫고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만들어 정치인들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1972년 한국 유학 후, 50년 가까이 한·일 관계를 연구해온 일본을 대표하는 한반도 연구자이다. 게이오대 지역연구센터 소장, 한·일 신시대공동연구프로젝트 일본 측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의 외교자문위원 역할을 했다. 저서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개입 과정' '위기의 한반도' 등이 있다.

―일본이 지난 4일 발동한 경제 제재의 배경은 무엇인가.

"제재의 '타이밍'보다 그 이유에 주목해보자.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차압된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되기 전에 아베 내각이 견제구를 날렸다고 본다. 복싱으로 하면 일본에서 '잽'을 날린 것이다."

―일본의 '견제구'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일본이 한국에 요구한 중재위원회 구성에 응하기를 기대하며 실시한 조치다. 한국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기를 기대하며 한 것인데, 의도한 결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한·일 관계 사상 일본이 처음으로 경제 제재를 취했는데.

"문재인 정권은 그동안 한·일 관계를 방치해왔다. 이에 대해서 일본은 매우 초조해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이번 사태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은 한·일 관계의 기반인 법적인 토대(1965년 한·일 기본합의)가 흔들린다고 보고 위기감을 갖고 있다."

―일본의 여론 동향은 어떤가.

"2015년의 위안부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 내에는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는 생각이 크게 확산됐다. 일본인 장년층은 한국이 (약속한 것을 모두 무효로 하니) 이젠 무슨 교섭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 상황 악화에도 한·일 민간 교류는 늘고 있다.

"몇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이전에는 한·일 간 문제에 대해 한국이 더 분노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다. 일본의 경제 제재 관련, 한·일의 신문이 자국의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것도 전에 없던 현상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간 많은 위기가 있었다. 이번 사태는 그중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하나.

"(한·일 관계 사상 가장 큰 위기였다고 하는)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도 있지만, 그것은 일과성이었다. 한·일 관계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지난 50여년간의 역사가 모두 의문시되는 것이다. 지금은 한·일 관계 정상화 이후 최대의 위기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는가.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것은 이번 사태에 한국의 사법부가 관여돼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정부'라고 자임하고 있지 않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 판결에 반(反)할 수 있겠나. 그래서 외교적으로 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제 한·일 관계는 '1965년 정상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는 현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1965년 한·일 기본합의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아무런 협력도 하지 않는 극단으로 가면서 재일 교포 문제를 비롯해서 한·일 어업협정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는 한국이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명기된 대로 중재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재단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일본의 징용 관련 기업은 중국에 보상한 것과는 달리 한국을 위해 돈을 내놓은 적이 없다. 대중(對中) 보상을 참고로 해서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는.

"양국이 이 문제에 대해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첫째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사태 악화를 막는 방법은.

"양국 국민이다. 이 심각성을 양국 국민이 깨닫고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만들어 정치인들을 움직여야 한다."

―단기간 내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치가들은 이런 이슈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한국도 내년 4월 총선거가 있지 않은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전에 움직여야 한다. 8·15 광복절 이후부터 올해 12월까지 4개월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