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대가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일찍이 아일랜드를 '탈출'했지만 일생 아일랜드를 그리며 아일랜드를 저술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은 어렸을 때, 당시 아일랜드의 민족 지도자 찰스 파넬의 간통 사실이 드러나서 그를 원수처럼 증오하게 된 어른들과 그래도 그를 지지하는 어른들의 격렬한 언쟁에 크나큰 충격을 받고 일생 조국에 대한 애증의 갈등을 겪는다. 어린이는 자신의 부모나 국가의 불명예나 결함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겹다.

우리의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가 어린이들에게, 오랜 빈곤과 불행을 마침내 극복하고 온 국민의 노력으로 세계 10위권 국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당한 국가도 못 되는 하찮은 '정부', 수치스러운 불의와 불평등 사회의 시민으로서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는 것이 시민의 도리이며 나라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인식시키고 있다.

현행 중·고교의 거의 모든 역사, 한국사 검인정 교과서는 한반도에서 북한이 정통성을 지닌 국가이고 남한은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 체제였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편찬하는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2016년, 2017년에 사용하던 교과서를 2018년용으로 수정한다면서 집필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필자 인감을 위조해서까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없애고 대한민국이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사실과 북한의 안보 위협을 삭제하는 등 자그마치 213군데를 수정했다고 한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이런 것인가?

그 후속으로 나온 2019년도 초등 6학년 교과서는 4·19 혁명-5·18 광주항쟁-6월 민주화 운동-촛불 시위가 우리 현대사의 발전 단계인 것처럼 제시하며 동학도들의 '사발통문'식으로 오늘의 상황을 타도하자는 격문(檄文)을 작성해 보라는 과제도 부과하고 있다. 타도해야 할 상황은 좌파 정부인데 우파가 주적이라고 배운 초등학생들이 정신 분열로 내몰리지 않을지….

그런데 이 분별 없는 정부가 계획대로 내년도 6·25 기념행사를 북한과 공동으로 개최하면 그 이후엔 모든 교과서에 6·25가 민족의 통일을 위해 남북이 합심해서 38선을 허물고 재결합의 환희와 감격을 나눈 사건으로 대서특필하지 않겠는가? 백만 호국 영령을 이토록 모독해도 하늘은 지켜보기만 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