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은 2003년 중국·홍콩 경제무역긴밀화협정(CEPA) 체결 이후 홍콩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돼 집값을 끌어올렸다. 중국 돈과 함께 사람도 밀어닥쳤다. 홍콩 부동산 가격은 15년간 400% 뛰었다. 지난해 거래된 부동산 평균 가격이 집 한 채당 14억5000만원에 달한다. 홍콩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홍콩의 집값 문제를 내버려둬 온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번 시위를 기점으로 폭발했다"고 썼다.

홍콩의 치솟는 집값은 젊은이들에게 편하게 누울 곳을 허락하지 않는다. 홍콩 집값은 9년 연속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손에 쥔 돈이 없는 젊은이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내 집 마련 희망이 사라진다. 이들은 부모 집에 얹혀살거나, 침대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창문 없는 초소형 '마이크로 주택'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이 빨래방이다.

◇"살인적 주택 가격… 답답하지만 얹혀삽니다"

지난달 말 홍콩 한복판 성완(上環)역 근처에 있는 공유 빨래방 '커피 앤드 런드리'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한 20대 여성이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근처 한 고층 아파트에 가족과 함께 산다는 대학생 루이(24)씨는 "집에 세탁기는 있지만 워낙 좁아 내 빨래까지 널 공간이 없다. 답답한 집을 나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빨래 핑계를 대고 이렇게 나온다"고 했다.

빨래방이 카페 - 홍콩 성완(上環)역 부근에 있는 공유 빨래방 ‘커피 앤드 런드리’에 찾아온 손님들이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 함께 온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살인적인 집값 상승이 그들을 얼마나 좌절시키는지 털어놓았다. "동료 중에 마흔이 다 됐는데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홍콩에서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해요."(피터 쿠퍼·28), "조용히 책을 읽을 공간이 집에는 없어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오면 동생 둘을 돌봐야 하고요. 친구들과 함께 작은 집을 얻었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서 그마저도 힘들어서 다시 집에 들어왔죠."(미리엄 채·23)

◇21년 모아야 집 장만, "화가 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엔 빨래방이 없었다. 보통 집에 있는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에 넣거나 빨랫줄에 널었다. 당연했던 이런 빨래 패턴은 부동산 폭등으로 무너졌다. 대신 2014년쯤 홍콩에 등장한 빨래방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빨래방에서 만난 벤저민 쿠오(33)씨는 "결혼하고도 부모 집에 얹혀산다면 믿겠느냐"며 웃었다. "월급이 많아도 독립하면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내야 해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신혼집을 마련하기가 불가능하죠. 홍콩에선 결혼한 뒤에도 부모님 집에 함께 사는 신혼부부가 적지 않습니다." 홍콩 사람이 아파트 하나를 사려면 평균 21년(한국은 약 13년) 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9년 전 아랍권을 뒤흔든 이른바 '아랍의 봄' 때도 불만의 바탕엔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독재도 문제였지만 경제(청년 실업률이 무려 30%)를 살리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1.8평… 엄마랑 둘이 살아요 - 홍콩 토박이 청년 소닉 리(29)가 지난달 28일 홍콩의 한 아파트의 침대 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의 크기는 6㎡(약 1.8평)로 어머니와 함께 쓴다고 한다.

빨래방의 청년들을 만나고 온 후부터는 이들이 외치는 반정부 구호가 더 절실하게 들렸다. 금융회사에서 15년 동안 근무한 홍콩인 A의 이야기가 머리에 맴돈다.(그는 집세가 너무 올라 얼마 전 홍콩 중심지 센트럴 근처 아파트를 포기하고 외곽인 공항 근처로 옮겼다고 했다.) "홍콩의 웬만한 아파트 값이 3.3㎡(약 1평)당 1억원이 넘는 것을 아는가. 그런 집을 사는 것이 가능이나 한가. 홍콩의 젊은이들은 세탁기 하나 놓을 수 없는 방 한 칸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닭장 주택'이라고 부른다.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화려한 도시지만, 자립은 꿈도 못꾸는 홍콩 청년들… 영화 '기생충' 보는 듯

홍콩은 마치 영화 '기생충'을 현실에 옮겨놓은 것 같은 도시였습니다. 큰길엔 럭셔리 브랜드 상점들이 빼곡했지만 모퉁이 하나만 돌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기괴하게 가늘고 높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뒷벽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인 에어컨 실외기가 줄지어 매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실외기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좁은 골목을 오갑니다.

저는 현재 홍콩과 가까운 중국 선전(深圳)에서 어학연수 중입니다. 선전 청년들은 술집·카페에 모여 수다를 떨지만 홍콩은 그 '분출구'가 빨래방이었습니다. 높은 집값 때문입니다. 외벽이 다 스러져가고 갈라진 50년 된 건물 속 33㎡(약 10평)짜리 집 월세가 2만3000홍콩달러(약 350만원)쯤입니다. 수많은 홍콩 청년이 독립은 꿈도 못 꾼다고 합니다. 다 커서도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에게 빨래방은 숨구멍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집값이 반(半)강제적 캥거루족을 계속 늘어나게 합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홍콩처럼 '독립 불가'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닐까 아찔합니다. 홍콩에서 만난 한 동갑내기는 "내 집 마련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심각해지기 전에 (정부가) 행동했어야 했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