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 내에서 미국이 악화된 한일 사이에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수출 규제가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산업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한·미·일 안보협력까지 흔들 수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나서도록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정부가 뒤늦게 미국에 SOS를 치려는 모양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서 해결했던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사태 역시 미국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출 규제는 미국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중재자로 나서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4년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를 주선했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도 막후 조정자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그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한일 간 문제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미 국무부는 "미국은 한국·일본과의 3자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원론적 언급만 했다. 미 조야에선 "한일 관계가 이토록 악화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중재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한일 간 충돌 국면이 이어질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방치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미 국무부가 한일 간 갈등을 지금까지 방치한 것은 좀 지나쳤다"며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도 국제 여론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정부가 뒤늦게 백악관에 SOS를 치는 모양새가 좋지는 않지만, 현실적이고 가능한 방안은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