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 1963년 8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연설을 했던 곳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오후 6시 30분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이 링컨기념관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로 올라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생일대의 쇼"라고 말한 '미국에 대한 경례(A Salute to America)' 행사의 막이 오른 것이다.

링컨기념관 앞 호수를 빙 둘러 행사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참가자는 "USA!"를 연호했다. 이 호수 주변은 인종차별 반대 집회, 반베트남전 시위 등 미국 역사의 주요 집회가 열린 곳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국민끼리 즐기는 날이었다. 243번째 올해 독립기념일은 달랐다. 대통령이 군중 연설에 나서고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가 동원된 군사 퍼레이드이자 이벤트였다.

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부부(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무대에 서서 곡예비행단 블루에인절스 F-18 전투기의 공중분열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에이브럼스 탱크와 브래들리 장갑차, B-2 전략폭격기와 F-35 전투기 등 각 군을 대표하는 무기들이 선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에 따라 해안경비대의 MH-60, MH-65 헬기와 C-130 수송기가 링컨기념관으로 날아왔고, "하늘은 미국 것"이라고 할 때는 B-2 전략폭격기를 호위한 2대의 F-22 랩터 전투기가 워싱턴 상공을 갈랐다. 해군과 해병대, 육군의 최신예 F-35 전투기와 F-18, AH-64 아파치 헬기도 등장했다. 곡예비행단 블루에인절스 F-18전투기 6대는 공중분열 비행을 선보였다.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에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하는 것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68년 만이다. 이 때문에 행사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을 자신의 재선을 위한 '정치쇼'로 만든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 정치색을 거의 넣지 않았다. 그는 45분간 연설에서 미국의 위대함을 주로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나라가 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길에 충실하고, 우리가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미국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며 "우리는 곧 화성에 성조기를 꽂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특별한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온 것 중 가장 위대한 이야기, (바로) 미국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재임 기간 중 거의 없었던 통합적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연설은 통합 메시지였을지 모르지만, 이날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은 더 둘로 갈라졌음이 드러났다. 행사장에 참가한 사람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구호인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낸시 산체스씨는 워싱턴포스트(WP)에 "마틴 루서 킹의 연설에 참석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킹 목사의 연설 때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방탄유리 뒤에서 연설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철제 펜스가 쳐졌다.

‘똥 누는 트럼프’ 로봇까지 등장 - 4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독립기념일 행사장 인근에 등장한 ‘똥 누는 트럼프(Dumping Trump)’ 로봇.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위대도 수십 명씩 무리지어 행사장 곳곳에서 트럼프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일부 과격 시위대는 백악관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며 트럼프 지지자들과 충돌했다. 행사장 인근엔 반(反)트럼프의 상징이 된 기저귀를 찬 '베이비 트럼프' 대형 풍선도 등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 좌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며 트위터를 하는 '똥 누는 트럼프(Dumping Trump)' 로봇도 공개했다. 이 로봇은 "가짜 뉴스, 공모는 없다, 매우 안정된 천재" 등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하던 말을 반복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군사력 과시 같은) 이건 독재자들이 하는 행사"라고 썼고,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대통령은 이날이 자신의 생일이 아니라 미국의 생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CBS 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사를 놓고 미국이 분열했다"고 했다. NYT는 "한 장소에서 미국이 각자 독립기념일을 축하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