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공적연금만 받고 생활하는 노인의 93%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노후소득보장 장치인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기초보장제도 지원을 합해도 노인의 16.9%만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을 유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일 발간한 ‘보건복지 이슈 앤드 포커스’의 최신 보고서 ‘한국의 노인 빈곤과 노후소득보장’에 따르면 노인가구의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정부지원 등이 포함된 공적 이전소득 규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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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201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인(65세 이상)에 대한 공적 지출이 2.23%에 그쳤다. 이는 그해 OECD 평균인 7.7%를 한참 밑돌았다.

1980~2013년 사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주요 OECD 13개국은 당시 GDP의 6.51%를 노인의 소득보장을 위해 사용했다. 1980년 이전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돌파한 7개국의 경우 7.05%를 공적이전소득으로 노인에 할당했다.

반면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는데도 당시 GDP에서 공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했다.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의 노인 단독가구 소득의 11.9%, 부부가구 소득의 22.5%에 불과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2003년 기준 공적연금 소득이 90.6%를 차지했다. 프랑스(88.5%), 독일(86.7%), 스웨덴(85.9%), 이탈리아(81.1%), 영국(72.1%), 아일랜드(62.9%)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연금에 공무원·군인연금 등 직역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가구는 전체의 41.3%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노인가구의 70%는 기초연금을, 9.5%는 기초보장을 수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공적연금만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인 비율도 낮았다. 2014년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노인 7.4%만이 빈곤을 탈피할 수 있었다. 92.6%는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위소득 50% 기준으로는 6.4%에 불과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기초보장제도 수입까지 받아도 16.9%만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을 유지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과 낮은 노인 공적이전소득의 원인으로 ▲연금이 성숙할 때까지 가족의 사적 이전소득에 의존해야 하는 적립방식의 국민연금 ▲하향식 공적연금 확대 방식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 및 불안정성 문제 ▲낮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의 낮은 급여 수준 ▲재정안정성 중심의 보수적인 노후소득보장 정책결정구조 ▲사적 부양을 대체할 공적 부양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 등을 꼽았다.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최고 수준이며, 이는 생애주기 간, 세대 간, 계층 간 재분배 수준이 낮음을 시사한다"면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낮은 노인 공적이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교적 낮은 공적 지출로도 노인 빈곤율 수준을 낮게 유지하고 있는 선진 복지국가 사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