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선 "역시 일본은 무섭다"는 말이 돌았다. 규제한다는 사실보다, 대상이 된 소재 3종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일본 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당장 대만이나 중국, 국내 기업 등으로 수입처를 바꾸기 어려운 소재들이다. 게다가 국산화하기도 가장 어려운 소재다. 예컨대 반도체의 회로를 그리는 소재인 감광액(포토 레지스트)은 일본 스미토모와 신에쓰가 세계 시장을 장악한 분야다. 국내에서도 금호석유화학, 동진쎄미켐, 동우화인켐 등 제조사가 있다. 문제는 국내산 감광액은 수준이 낮아, 10나노급 이하 초미세 공정에는 쓸 수 없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 수준의 감광액을 만들려면 국내 기업은 아예 '제로'부터 연구개발(R&D)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백 종을 모두 검토해 신중하게 3종을 추려냈다는 게 국내 반도체 업계의 판단이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한국 반도체의 취약점을 검토·준비해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화수소(에칭가스)는 흡입만 해도 신경 조직을 손상하는 맹독 물질이다. 보관과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한 달치 이상 재고를 쌓아두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한꺼번에 수개월치씩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일본의 이번 '90일간 수출 허가 규제'를 우회하기 어려운 소재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올 초부터 검토한 사안이다. 일본은 안보상 신뢰 관계인 27국을 화이트 국가로 지정해 전략 물자의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데, 다음 달부터 한국을 중국과 동급인 비(非)화이트 국가로 변경한다. 올 초 일본 자민당 내 의원 모임 '국방부회(會)'와 '외교부회'가 이런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아오야마 시게하루 의원(자민당)은 지난 2월 초 "일본의 좋은 부품을 가져다가 완성품을 만드는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이라며 "이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오랜 준비를 한 만큼, 경제 보복 2탄·3탄이 연이어 나올 우려도 크다. 일본 업무를 맡는 한 로펌 관계자는 "또 다른 보복 카드로는 반도체와 관련한 다른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 현대자동차에 대한 일본산 부품 수출 규제, 한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이 모두 검토 대상인 것으로 안다"며 "일본 경제·산업계에선 아베 정부가 100가지 경제 보복 시나리오를 면밀하게 검토했다는 말이 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준비한 기간과 경위"를 묻는 본지 전화 질의에 "내부 진행 상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