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축축한 늪에서도 생명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1950년대 미국 남부, 무법자나 부랑자들이 정착해 판자촌을 이룬 해안 습지대.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엄마와 형제들이 하나둘 집을 떠나고 홀로 남은 소녀 '카야'는 주변 동식물을 채취하며 생존법을 찾아나간다.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왼쪽)의 제작으로 영화화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

광활한 습지 위에서 펼쳐지는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살림)은 올해 미국 서점가를 휩쓸었다. 일흔의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70)가 쓴 첫 소설로 출간한 지 반년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북클럽을 운영하는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추천으로 화제가 되며 27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메일로 만난 오언스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 습지는 기후가 온화해 풀들이 무성하고, 굴이나 홍합을 채취해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며 "한 어린 소녀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빛에 물길이 반짝이고, 수평선을 따라 초록빛 풀들이 끊임없이 흐르는 시적인 공간이기도 하죠. 어둡고 불길한 늪에 비하면 습지는 희망과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한 저자 델리아 오언스는 "아프리카에 있을 땐 동료 연구자인 남편과 부시맨들 빼고는 7년 동안 사람을 못 만난적도 있었다"고 했다.

소설은 마을에서 인기 있던 청년 '체이스'가 늪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야생에서 홀로 살아가는 소녀 카야를 살인 용의자로 의심한다. 시체에 얽힌 비밀을 찾는 스릴러와 카야의 성장담이 교차하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오언스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늪에 빠진 듯한 시기를 지난다"면서 "카야는 생존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인 비결은 흥미진진한 서사만이 아니다. 번번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림받는 카야의 외로움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델리아 오언스는 "내 책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며 "무리에서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소녀에게 고립과 외로움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카야는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를 버리고 떠나는 암여우를 보며 떠나간 엄마를 이해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조개껍데기나 새 깃털들을 수집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가까이 지내온 작가의 경험이 담겼다. "어릴 때 어머니는 제게 숲을 깊이 탐험하거나 사슴을 관찰하도록 하셨어요. 어머니는 늘 '저 너머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죠."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이다.

평생 야생의 동식물을 관찰해온 저자의 경험은 섬세하고 시적인 묘사로 이어진다. 모래와 진흙 위 발자국을 찾는 장면에선 "모래는 진흙보다 비밀을 잘 지킨다"고 표현한다. "잠비아에서 코끼리 발자국으로 코끼리 군집의 연령 구조를 추측하는 연구를 했어요. 모래에 찍힌 발자국은 흐려져 알아볼 수가 없는데, 진흙에 찍힌 것은 테두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죠."

저자는 캘리포니아대 동물학 박사를 마치고 23년간 아프리카에서 사자나 하이에나, 코끼리 등 야생동물을 연구했다. "사자가 부엌으로 들어와 밀가루 포대를 훔쳐가기도 하고, 어린 하이에나가 욕조에 받아둔 물을 핥고 가기도 했죠. 하루도 놀랍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오언스는 "동물의 행동이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지 깨달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야생에서의 깨달음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어요. 오늘날 인간의 행동과 감정의 많은 부분이 오랜 진화의 결과라고 믿는 생물학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