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 '한성치킨'은 프라이드치킨이 대표 메뉴다. 한 입 씹으면 오도독 소리를 내며 과자처럼 부서지는 튀김옷과 닭고기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입속에서 파도를 일으킨다. 한국인이 거부할 수 없는 양념을 휘감은 양념치킨(아래 사진)과 더불어 한국 특산품이라 자부할 만한 맛이다.

뉴스만 보면 한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생활필수품도 아닌데 치킨값 인상한다는 낌새만 풍겨도 언론과 여론이 들썩인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 한국은 일인당 연간 닭 소비량이 약 17kg 정도로 세계 20위권 언저리에 불과하다(1위는 이슬람국가인 아랍에미리트로 일인당 70kg이나 된다). 이유는 상위권 나라처럼 주식이 아닌 간식(혹은 야식)으로 닭고기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매 끼니 식사에서는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간식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도 된다. 차가운 라거 맥주처럼 바삭한 미국풍 프라이드 치킨, 바삭함은 덜하지만 에일 맥주처럼 묵직한 전기구이 통닭, 혹은 일본 나고야식 닭날개 튀김을 벤치마킹했다는 혐의가 짙은 간장 양념 치킨 등 한국의 치킨 시장은 전 세계 조리법을 빨아들인다. 미식의 최첨단에 치킨이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도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럼에도 역사를 품고 개성을 지닌 치킨집을 찾자면 우선 경기 수원시까지 가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바다 도시 속초의 특산품이 닭강정이 되는 나라에서 수원이 왜 치킨으로 유명한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수원 남문 근처에 여러 치킨집의 강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곳은 주말이면 어린이날 놀이동산처럼 혼이 쏙 빠진다. 대신 만석공원 근처 '용성통닭'에 가는 편이 정신적 부하가 적다. 공원에서 바람이 하늘하늘 불어오는 곳, 불을 밝게 켠 이 집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치킨을 나른다. 그 틈을 비집고 자리에 앉으면 가마솥통닭, 고추간장치킨의 유혹을 뿌리치고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을 시키는 것이 초심자의 올바른 자세다. 프라이드는 소금을 찍지 않아도 살코기에서 짭짤한 맛이 올라온다. 배경에 잔잔히 깔린 단맛은 묵묵한 왼손처럼 그저 거들 뿐이다. '파삭' 소리가 저절로 나는 튀김옷은 햇볕에 말린 하얀 셔츠 자락처럼 바스락거린다. 가마솥에서 확실히 수분을 날려가며 튀겨서 그렇다. 튀김옷이 비칠 정도로 얇게 코팅된 양념통닭은 달고 매운맛이 오순도순 모여 있다. 아이는 콜라, 부부는 맥주를 나눠 마시는 모습처럼 맛도 정겹다.

서울로 올라와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기면 '롸카두들 내쉬빌 핫치킨'이 있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스타일로 핫소스를 뿌려 먹는 매운 치킨과 치킨을 집어넣은 버거를 파는 곳이다. 조각 단위로 파는 치킨은 중학생 패딩처럼 두툼한 튀김옷에 입안을 벗겨버릴 기세로 뜨겁게 매운 소스가 스며들었다. 매운 단계를 올리면 입술이 붓고 혀가 말리는 경험까지 할 수 있다. 치킨도 치킨이지만 버거 역시 기본 이상이다. 두운과 각운을 에누리 없이 맞추는 랩처럼 맛의 시작과 끝이 깔끔하다. 코울슬로, 칠리마요, 마요네즈 같은 소스가 탄탄한 허벅지처럼 맛의 이음새를 메워주는 덕이다. 이제 방향을 돌려 경기도 김포시까지 가보자. 김포에서도 한참 들어간 대곶면에 가면 포장 영업만 하는 '한성치킨'이 있다. 예전에는 전화 연결되는 것조차 힘든 때도 있었다. 지금은 건물을 새로 올리고 포장에만 전념하기에 한결 먹기가 수월해졌다. 가게 안 칠판에는 예약자 현황이 장마 뒤 잡초밭처럼 빼곡히 적혀 있고 직원들은 비닐봉지 묶기에 바쁘다. 유선지에 그득 담아 주는 치킨의 본새는 어릴 적 아버지 손에 들렸던 것과 같다. 열기를 빼기 위해 열어둔 봉지 사이로 냄새가 올라오면 일단 어디에든 주저앉아 치킨을 입에 넣고 싶어진다. 과자일까, 튀김일까, 고드름처럼 오도독 튀김옷이 부서지면 이성의 끈도 함께 끊긴다. 한입 크기로 잘게 자른 치킨을 한 손으로 먹다가 두 손을 쓰게 된다. 차에 앉으면 시동 거는 것도 잊는다. 고소하고 짭짤한 튀김옷은 감량을 마친 복서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치킨에 듬뿍 묻힌 양념은 콧소리 잔뜩 넣은 트로트처럼 한국 사람이 싫어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그 맛에 이끌려 무산소 운동하듯 치킨을 빠르게 먹게 된다. 다 먹고 나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치킨을 끊지 않는 한 제비처럼 무조건 이곳으로 돌아온다. 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