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이다, 상당한 재력가다 등 소문만 무성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스타 검사로 떠오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인 이야기다. 윤 지검장의 부인 김건희 씨는 남편의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다 이번에 윤 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김 씨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부인은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다. 윤 지검장은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에서 활약하며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승승장구하다 선배 기수를 제치고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윤 지검장이 청문회 대상에 오르자 그의 부인 김 대표도 남편과 함께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건희 대표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는 2007년에 설립된 전시기획 업체다. 김 대표는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시작으로 앤디 워홀, 샤갈 전 등을 기획했으며, 마크 로스코 전으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기획자로 자리매김했다. 마크 로스코 전은 2015년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최다 관람객상’ ‘최우수작품상’ ‘기자상’ 등을 받았다. 로스코 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에는 일이 잘 풀렸다. 현대 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특별전 등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굵직한 현대 예술가의 전시를 주로 기획했다.

윤석열 재산 법무·검찰 고위직 중 1위

김 대표는 재산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9년 정기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윤 지검장의 재산은 65억9077만원이다. 그중 윤 지검장 명의의 재산은 2억1386만원의 예금뿐이다. 서울 서초동 복합건물(12억원), 경기 양평의 토지 4528㎡(2억458만원), 예금(49억7232만원) 등 재산은 대부분 김 대표 명의다. 부부의 재산은 법무·검찰 고위직 중 가장 많다.

윤 지검장이 총장후보로 지명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대표는 새로운 전시를 개최했다. 프랑스 트루아 미술관 소장품을 소개하는 이다. 6월 12일 열린 개막식에는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양우 문화체육부장관, 조성부 연합뉴스 사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안민석 의원, 손혜원 의원 등이다.

2018년에 김 대표가 기획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에도 지상욱 바른정당 국회의원,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 강경화 외교부장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등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사기업이 주최하는 전시에 정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모 전시 기획업체 대표 A씨는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요즘 예술계가 불황이라 전시장에 사람이 많지 않은 걸로 안다. 코바나컨텐츠의 경우 김 대표의 남편이 검찰 내 유력인사라는 점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 대한 업계 평판은 긍정적이다. A씨는 “김 대표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일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하마평에 오르니 김 대표 사업이 남편 덕에 컸다는 의심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전시 내용이 특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시 내용을 살펴보러 야수파 특별전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을 찾았다. 평일이어서인지 전시장 안은 한산했다. 도슨트가 작품 설명을 하는 시간이었지만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10명 내외 관객과 혼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대여섯 명을 포함해 20명도 채 안 됐다. 매표소 직원에게 개막식 후 관객 수가 많은 편인지 물었다. 직원은 “요즘 예술계가 불황이어서인지 미술관을 찾는 관객이 많이 줄었다”며 “평일이라 그런 탓도 있지만 대체로 조용한 편”이라고 말했다.

‘어쩌다 마주친’ 김건희 대표

전시장 내부를 둘러봤다. 전시는 지하 1층에서 시작돼 지상 1층까지 동선이 이어진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여느 전시들과 규모가 비슷했다. 작품 수는 많았다. 7개 섹션으로 나뉜 공간에는 야수파와 입체파 작가들의 대표작이 걸려 있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마치 미술품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이동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김건희 대표였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까만 정장을 입은 김 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전시장에서 김 대표와 마주쳤을 당시는 김 대표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올라 있었다. 때문에 전시장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김 대표에게 “‘빅벤’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라고 물었다. 앙드레 드랭 빅벤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김 대표는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줬다. 기자가 “대표님, 인터뷰 좀 하시죠”라고 하자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은 바빠서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김 대표를 찾아다녔다. 까만 커튼으로 분리한 1층 관계자 사무실, 전시장 내부를 둘러봤지만 김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코바나컨텐츠로 김 대표에게 인터뷰 요청을 넣었다. 홍보 담당자는 “전시와 관련된 자료는 전달할 수 있지만 대표 인터뷰는 진행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남편 일로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2018년 4월 주간조선과 인터뷰한 그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남편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편이 자신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게 편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두 사람은 2012년 결혼했다. 당시 윤 지검장은 53세, 김 대표는 41세였다. 윤 지검장이 늦은 나이여서 재혼이 아니냐는 오해를 샀지만 초혼이다. 당시 김 대표에게 윤 지검장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저씨’일 뿐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을 알고 지내던 한 스님이 나서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할 당시 윤 지검장은 통장에 든 200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50대 남자의 재산치고는 적어도 너무 적었다. 반면 김 대표는 1990년 후반 주식으로 번 돈이 꽤 됐다. 그 돈을 밑천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재산을 불렸다. 당시 윤 지검장이 돈이 너무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려 했지만 자신이 아니면 영영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다.

윤 지검장이 수중에 2000만원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는 식사자리든, 술자리든 빚을 내서라도 먼저 계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결혼 전부터 윤 지검장의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아들의 빈 지갑을 채워주기 일쑤였다. 32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 동기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했으니 지갑을 채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결혼 후에도 윤 지검장의 그런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 대표가 남편의 성정을 보고 내려놓는 부분이 생겼다. 변호사를 개업하면 돈을 좀 벌 줄 알았더니 의뢰인을 혼내기 바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폭로했을 때도 김 대표가 “가만히 있지 그러냐”고 하자 윤 지검장은 “감옥에 가더라도 역사에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렵게 공직생활을 하던 남편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주목을 받았다.

지위가 달라진 남편 때문에 활동이 위축될 만도 한데 김 대표는 오히려 일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그는 “남편이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전업주부만 할 수는 없다”며 “윤석열의 부인이 아닌 김건희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할 때도 굵직한 기획전시를 꾸준히 진행한 이유다. 더군다나 전시를 할 때마다 굵직한 인사들이 개막식을 찾아와 테이프 커팅을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라지만, 당사자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 이목을 끌지 않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