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3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訪韓)을 앞두고 주한 미국 대사관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 현황 파악에 나선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30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기업인들 간 간담회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를 독려·압박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 재계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삼성·LG 등 일부 대기업은 내부 회의를 열어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 발언에 대비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이날 "미 국무부가 최근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 대기업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구체적인 '대미 투자 현황 자료'를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사관 측은 삼성·SK·롯데 등 주요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최종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간담회는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주한 미국 대사관과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공동 주관으로 열린다. 기업인들이 국빈 만찬에만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한(2017년 11월)과 달리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인들만 상대하는 별도 일정이 잡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당부 수준의 의례적 발언보다는 과감한 투자 확대 요구, 미·중 무역 분쟁과 관련한 민감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화웨이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사용하는 LG유플러스, 화웨이에 메모리 등을 납품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직접 압박할 수도 있다.

재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돌발적으로 특정 기업을 콕 집어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5대 그룹사 관계자는 "2014년 오바마 대통령 방문 때도 기업 투자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대미 투자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 기업으로선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을 직접 접촉해 압박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주한 미 대사관은 작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총수급이 동행한 삼성전자·현대차·SK·LG·포스코·현대 등을 개별 접촉, "대북 사업 계획 관련 질의를 위한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진행하겠다"며 방북 전후 검토한 '대북 사업 현황'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5일 대사관 주최 콘퍼런스에 참석한 국내 IT(정보 기술) 업체들 앞에서 "5G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반화웨이 전선' 동참을 명확히 요구했다. 앞서 미 재무부는 작년 9월 국내 7개 은행과 콘퍼런스콜을 갖고 '대북 제재에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우리 정부에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무기 구매를 요구하고, 무역 불균형 문제를 거론할 것이 확실시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기업들에 들이밀 '청구서'를 갖고 와 이번 방한 초청에 응한 대가를 최대한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인 간담회 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판문점 방문이 유력하지만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일대 등을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편 방한에 앞서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출국을 하루 앞둔 25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최근 주고받은 친서에 추가 정상회담 관련 언급이 있었는지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아마도 있었을 것"이라며 "언젠가 우리는 그것(회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날 미·북 대화의 전제 조건을 묻는 미국의소리(VOA)방송 질의에 "협상의 전제 조건은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