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논설위원

요즘 일본에선 '노후 불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금융청이 발표한 '고령 사회에서의 자산 형성·관리'라는 보고서가 논쟁을 촉발했다. 은퇴 노인 부부가 연금만으로 생활하기엔 월 50만원 정도 부족하기 때문에 은퇴 시점에 최소 2억원의 여윳돈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보고서의 골자다. 우리나라는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의 노후 대비 상황만큼은 일본과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일본 노인 부부의 경우 국민연금(우리나라 기초연금 격)과 후생연금(우리의 국민연금)을 합쳐 19만1880엔(약 207만원)의 월수입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 노인 부부는 기초연금 40만원, 국민연금 45만원 등 평균 월수입이 85만원뿐이다. 국내 한 전문가가 일본 금융청 방식으로 계산해 보니 한국 노인 부부는 노후 자금이 3억3000만원이나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일 노인 가구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보면 더 한심하다. 일본 노년층의 평균 저축액은 2484만엔(약 2억7000만원)이나 된다.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11%밖에 안 된다. 한국 노년층은 평균 저축액이 5371만원이고, 부채 비율이 83%에 이른다. 월급쟁이 고소득자도 자녀 사교육비 대느라 노후 자금 축적이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노후를 연금에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은 공무원, 교사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 받는 사람은 전체 수급자 450만명 중 35명뿐이다. 월급쟁이 회사원들이 연금 노후를 준비하는 방법은 국민연금 외에 개인·퇴직연금으로 연금 3층 구조를 최대한 쌓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수수료를 떼고 나면 연 1~2%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쥐꼬리 수익에 대한 불만이 비등하자 정부도 개선책을 찾고 있다. 퇴직연금의 경우 기업들이 단독 혹은 공동으로 국민연금처럼 별도 기금을 만들어, 노사가 공동으로 투자금을 운용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은행, 보험사들은 수익이 나지 않으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식의 수수료 인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둘 다 마뜩잖다.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할 수백, 수천개 '퇴직 기금'을 제대로 운용할 투자 전문가들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기금 이사회에 노조 대표가 들어가기 때문에 기금 운용이 노조에 휘둘릴 가능성도 있다. 은행들이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수수료 인하 방안을 보면, 퇴직연금(IRP) 계좌에서 투자 손실을 볼 경우에만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고, 수수료 인하 혜택을 주는 조건이 까다로워 생색내기에 그치는 느낌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적립금 규모가 퇴직연금(190조원)보다 훨씬 큰 개인연금(350조원)에 대해선 아무런 개선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수료는 개인연금이 퇴직연금보다 2배 비싼데, 수익률은 대동소이하다. 가입자들은 연말정산 세제 혜택에 코가 꿰여 울며 겨자 먹기로 개인연금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보험사들은 별 노력도 없이 꼬박꼬박 연 3조~4조원대 수수료를 챙긴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둘 순 없다.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켜 연금 시장의 '메기'로 만들 순 없을까. 최근 5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개인·퇴직연금 수익률의 1.5배 수준이다. 투자 인력 전문성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고수익 투자 물건을 선점할 수 있는 협상력 면에서 국민연금에 견줄 만한 투자 기관은 없다. 최근 국민연금 이사장도 "수익률이 더 나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주장이 있다"고 했다. 연금 수요자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에서 퇴직연금 운용을 국민연금에 위탁한다든지, 회사원들이 퇴직연금 넣을 돈을 국민연금에 추가 불입하게 하는 방법 등을 논의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