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괴물'을 쓴 건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여고생들이 먼저 문단의 성추행을 고발했는데 오히려 내가 늦게 시를 써서 미안했죠."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확산시킨 시인 최영미(58)가 6년 만의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로 돌아왔다. 25일 출간 간담회에서 최 시인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 시를 변호사에게 보내 검토했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냈다"면서도 "어머니 병간호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상의 일부인 재판도 자연스레 담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17년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시 '괴물'이 발표되고 고은 시인은 최 시인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1심에서 패소했다.

최영미 시인은 “작가회의 행사에 나가면 남성 문인들이 씩 웃으며 내 엉덩이를 만지고, 술자리엔 성희롱이 난무했다”면서 “언론사에 제보도 했지만 기사화되진 않았다”고 했다.

시집을 낸 출판사 '이미'는 1심 판결 이후 그가 직접 설립했다. 최영미는 "유명 출판사에 시집을 내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내 시집을 내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고 했다. 수록된 시 '사업자 등록'에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드나들던 머리에/ 계산서와 어음과 물류창고를 집어넣고' 출판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시집의 제목 짓기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생각한 제목은 '최후 진술'이었지만 "재판을 떠올리게 해서 바꿨다"고 했다.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도 후보 중 하나였는데 "최영미가 한 모든 노력이 헛되이 보일 수 있다"는 문정희 시인의 만류로 또 한 번 바꿔야 했다.

시 '괴물'을 포함해 '미투'와 관련된 시도 여럿이다. '바위로 계란 깨기'에선 문단 권력을 '썩은 계란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피라미드'에 비유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게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깨뜨린 거지'라고 말한다. '거룩한 문학'에선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다면/ 그의 자유는 공허한 말잔치'라고 분개한다. 다소 직접적인 시의 언어에 대해 최영미는 "문학성이 높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지금 든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옮길 방법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그는 1993년 등단 직후 썼던 시 '등단소감'을 이번 시집에 다시 실었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최 시인은 "누군가는 '왜 여태까지 침묵했냐'고 말하는데, 등단 직후부터 침묵하지 않고 불편하다고 표현해왔다"면서 "미투에 편승했다고도 하는데 시 '괴물'의 원고를 보낸 시점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기도 전이었다"고 했다.

일상을 기록한 시집에는 치매인 어머니를 보살피며 스친 생각들이 솔직하고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됐다. "집안 맏딸로 30대 초반에 집을 나와서 제멋대로 살아왔어요. 매일 어머니에게 도시락 싸가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최 시인은 "밥물을 붓는 것처럼 대충 살아왔지만,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다"면서 "시도, 연애도, 인생도 계산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