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교육청이 전주 상산고에 대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 교육부가 자사고 취소 절차에 동의하면 상산고는 자사고로 지정된 2002년 이후 17년 만에 일반고로 전환된다. 전북대 교수를 지낸 김승환 전북 교육감은 진보적 교수 단체인 민교협(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회원 출신이다.

전주 상산고는 "우리 학교에 대한 도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결과 내용은 형평성, 공정성, 적법성이 크게 어긋나 (재지정 취소를) 전면 거부한다"며 "부당성을 바로 잡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했다.

전북도교육청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19일 전라북도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를 열고, 상산고와 군산중앙고의 심의 결과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해 두 학교에 대해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군산중앙고는 자발적으로 자사고 지정 취소 신청을 했다. 반면, 상산고는 재지정 기준점(80점)에서 0.39점 모자란 79.61점을 받아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게 됐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상산고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사회적 배려 대상자)' 지표에서 4점 만점에 1.6점을 받았다.학생 1인당 교육비 적정성에서도 2점 만점에 0.4점을 받았다. 특히 감사 등 지적 및 규정 위반 사례가 적발돼 5점이 감점됐다고 전북교육청은 설명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전북도교육청은 내달 초 청문을 실시하고, 내달 중순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면 상산고는 17년 만에 자사고 지위를 잃게 된다.

상산고는 1981년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81) 이사장이 전주에 세웠다. 2002년 김대중 정부가 "고교 평준화에 따른 교육의 획일성을 보완하겠다"며 자사고를 도입할 때 자사고로 지정됐다. 홍 이사장은 이후 사재 451억원을 출연하고, 별도로 학생 기숙사 짓는 데 190억원을 지출했다.

전북도교육청이 0.39점이 미달된 상산고에 대해 지정 취소 절차를 밟기로 하면서 학교 측은 강력 반발했다. 전북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을 기존 60점에서 80점으로 대폭 상향했기 때문이다. 다른 시·도교육청은 올해 기준점을 기존 60점에서 70점으로 10점 높였다. 다른 지역의 경우엔 상산고보다낮은 70점만 받아도 자사고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전북도교육청이 상산고를 떨어뜨리기 위해 기준점을 높이고 평가항목을 수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이날 전북교육청의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전북교육청의 평가 결과는 그동안 상산고가 시종일관 주장해온 것처럼, 자사고 평가라는 원래 목적은 무시한 채, 정해진 결론인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기 위한 수순과 편법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영민 전북도교육청 학교교육과장은 "교육감은 물론 담당 직원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위원들을 만난 적도 없고, 상산고의 경우 정량 평가에서 감점이 있었지, 정성 평가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의도를 가지고 평가했다는 말은 틀렸다"고 했다.

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이 내려진 건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자사고 폐지’를 내걸었다. 특히 대표적인 진보교육감인 김승환 교육감은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교육감은 앞서 1월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교육부에서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권한과 관련해 문제 삼으면 교육부와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고는 5년마다 한번씩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올해는 상산고를 비롯해 전국 24개교가 재지정 평가대상이다. 상산고뿐만 아니라 강원 민족사관고, 경북 포항제철고, 울산 현대청운고, 서울 하나고 등 명문 자사고들이 올해 평가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010년 출범한 자사고는 한 때 전국적으로 54개교까지 늘었지만 현재 42개교로 줄었다. 서울 우신고·대성고·동양고·미림여고·용문고 등 5개교는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하는 등 12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됐다.

한편 전북도교육청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북문을 제외한 출입문을 폐쇄했다. 교육청 직원 10여명이 북문에서 서서 들고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했고, 1층 로비에서 2층 브리핑실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교육청 직원들이 2열로 가득 앉았다. 경찰 24명도 교육청 안팎에 배치됐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교육청을 찾은 상산고 학부모들은 "공공기관인도 왜 못들어가냐",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이게 뭐냐", "용인에서 여기까지 왔다. 부산에서 오는 학부모도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상산고 학부모들은 폐쇄된 정문 앞에 ‘전북교육은 죽었다’고 적힌 리본을 단 조화를 세우고 시위했다.

하영민 전북도교육청 학교교육과장이 20일 오전 전북도교육청
상산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발표일인 20일 오전 전북도교육청 앞에서 학부모들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